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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45.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제7장 노래와 덫

박봉환이가 다시 백사장포구에 나타난 것은 사흘 뒤였다. 용달차 적재함에는 보이지 않았던 푸른색 도료가 말쑥한 소형 물탱크 하나가 장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각은 해물저자도 진작 마감된 땅거미가 내려앉을 저녁 무렵이었다. 그 날은 두 내외가 함께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사내 먼저 뛸 듯이 반색하면서 식탁으로 잡아끌었다. 새우안주 장만은 봉환이가 극구 만류해서 김치 한 접시와 소주를 놓고 사내와 마주 앉았다.

그러나 안주인은 사뭇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봉환이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짐작이 뻔했지만 봉환은 전혀 내색 않고 딴청만 피웠다. 사내 먼저 사흘 전 노름판의 결과를 털어놨다. 봉환이가 건네준 백만원을 몽땅 날린 것은 물론이었고 이튿날 조업까지 나가지 못해 손해를 톡톡히 보았노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서 엉뚱하게 도박판에서가 아니라, 일같잖게 뭉칫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을 슬쩍 흘리며 봉환의 속내를 떠보았다.

그러나 봉환이가 이렇다 할 기색을 보이지 않자, 사내는 조리대의 아내에게 힐끗 일별을 보낸 다음, 턱 밑으로 바싹 다가 앉았다.

"새우잡이 한물이 언제까지 갈 것 같소? 가고 오는 것은 새우떼들 작정에 달렸으니까 포구에서 태어나 잔뼈가 굵었다는 놈들도 그건 짐작 못합니다. 떠났다 하면 나가서 손바닥에 뼈마디가 불거지도록 그물질을 해보았자, 어망에 걸려 올라오는 것은 불가사리들뿐입니다. 하루 아침에 허망한 게 새우 잡는 일입니다. 박형도 그쯤은 알고 있지요?" 말을 잇다 말고 사내는 되물었다.

뭔가 은밀한 속내가 있으면서도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봉환은 끝내 대꾸가 없었다.

"이런 씨알없는 고초를 겪지 않고도 뭉칫돈을 벌 수 있어요. 물론 바다로 나가야 하지만, 뼈빠지게 그물질을 할 필요도 없고, 귀한 기름 떼기면서 물길 찾아 헤맬 필요도 없어요. " "무슨 얘긴지 알겠습니다만, 난 그런 일 못해요. 안 들었던 걸로 합시다."

"내 딴엔 모처럼 공력 들여 한 얘긴데, 딱 잡아떼시네?" "잡아떼는 게 아니라, 나도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는 얘깁니다. 쇠고랑 찰까 봐서 질겁해서가 아닙니더. 그런 짓으로 뭉칫돈을 왕창 번다캐도 마땅하게 쓸데가 없는 처지라 카이요. 사고무친으로 혈혈단신 혼자서 굴러댕기면서 사는 사람인데 그런 돈이 왜 필요하겠습니껴? 뭉칫돈 가진 놈들은 대궐같은 집을 짓고 초저녁에는 안방에서 자고, 한밤중에는 건넌방에서 자고, 새벽에는 문간방에서 잠 잡니껴? 그게 아니지 않습니껴. 뱁새가 황새걸음 흉내내다가 가랭이 찢어지는 봉변당한다는 얘기가 농담인줄 압니껴?"

"박형 이제 보니까. 생긴 것보다는 옹졸하네?" "옹졸하다는 말은 그런데다 쓰는 말이 아니라요. 손형 (孫兄) 이야말로 찬물 마시고 정신채리소. 내가 금전에 게걸든 사람처럼 보입니껴? 그런 내가 손형 노름 밑천 댔겠어요?"

"나하고 합심해서 이틀만 나갔다 들어오면 그때 빌려준 돈도 냉큼 갚을 수 있고…. " "내가 빚 받으러 온 줄 알아요? 그게 아닙니더. 그때 드린 돈은 나도 잊었뿔 테니까 손형도 잊었뿌러요. 왕새우 수매하러 온 사람보고 별 희한한 소리를 다하고 있네. "

"이토록 각박한 포구 인심에 그것도 부지초면에 차용증서도 받지 않고 현찰을 건네준 것은 분명 무슨 꿍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던 것인데, 정말 그게 아니었소?"

"그게 아니면? 날 때려잡아서 피칠갑이라도 시킬랍니껴? 그 돈 안 갚아도 되니까, 물건이나 제때에 조달할 수 있도록 알뜰하게 거들어 주소. " 박봉환에게 백만원은 대수롭지 않은 액수의 돈은 아니었다. 그런 돈을 새우잡이 선장은 하룻밤에 도박으로 날려 버렸고, 봉환은 되돌려 받을 것을 단념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모험적이거나 객기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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