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바둑] 마샤오춘-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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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37면

느린 화면처럼

제7보 (117~138) =흑 한점을 그냥 넣어준 것이 무려 3집 손해여서 승부를 알 수 없게 됐다는 말에 검토실은 잠시 공습경보 비슷한 위기감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유창혁9단에게 물어보니 "거의 손해가 아닙니다. 반집쯤 될까요" 한다. 그렇다면 계가는? 하고 재차 물으니 "집은 비슷한데 흑이 두터워요. 흑 1집반 우세" 라고 시원한 해답을 내린다.

모든 건 기우였을까. 이창호니까 1집반이면 금성철벽이다. 그런데 이번 결승전의 분위기는 어딘지 달라 예전처럼 푸근하지 않고 일말의 불안감이 떠나지 않는다.

마샤오춘의 기세가 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예리할 뿐 아니라 이창호 쪽에선 희미한 감정의 흔들림을 보여주고 있다. 李9단을 돌부처라 부르지만 인간이 돌부처일 수는 없다.

李9단은 강한 승부욕을 깊숙이 숨기고 있을 뿐 그의 내면에선 언제나 뜨거운 불길이 솟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낄 수 있다. 요즘은 그 불길이 가로 세로로 번지려 한다.

119는 반상 최대의 역끝내기고 124로 중앙을 제압한 것도 놓칠 수 없는 곳. 중앙이 이렇게 커지면 '1집반' 은 틀린 얘기일지 모른다. 계산은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李9단의 125가 멀리서 반상에 떨어진다.

세상사의 시끄러움에 귀를 막은 듯 멀고 한적한 곳에 떨어진 125.검토실은 처음엔 할 말을 잊었다.

그러나 한참 후 수순이 좀더 진행된 뒤에 이 수는 "침착의 극치, 최선의 수" 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135도 더없이 느릿하지만 백 두점의 뒷덜미를 무겁게 압박하고 있다. 커지려는 백의 중앙을 먼저 지우려는 게 프로의 본능이지만 이창호는 먼저 136을 허용하고 그 뒤를 137로 따라붙는다.

138의 후퇴는 죽은 흑의 효과. 李9단은 마치 느린 화면처럼 움직이는데 그러면서도 백 두점이 슬슬 공격권으로 들어온다.

박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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