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식교수 산문평론집 '농경사회 상상력과…'펴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문학평론가 김윤식교수 (서울대 국문학과) 의 연구실 서가는 마치 조선시대 책걸이 민화같다.

책 제목이 보이도록 세로로 꽂는 대신,가로로 수북히 쌓아놓은 책들. 서가는 퍽 낡았으되, 그 주인이야말로 90년대 평단의 어느 논객보다도 젊은 눈을 지녔다.

새로 나온 김윤식교수의 산문평론집 '농경사회 상상력과 유랑민의 상상력' (문학동네.8천5백원) 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동시대 누구보다도 부지런한 걸음으로 작가들의 내면을 읽어온 평론가 스스로의 내면 풍경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산문평론집' 이라는 이름처럼, 이 책에는 산문의 맛과 평론의 맛이 골고루 난다. 동경대학 앞에서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을 처음 만났던 일, 그 딸이 학생으로 앉아있는 줄도 모르고 당시 신예였던 박완서의 소설을 읽을 만하다고 권했던 일. 80년대 중반 한강에서 자살한 제자의 일을 편지투로 써내려간, '과학세대의 K군에게' 같은 가슴쓰린 사연도 있다.

이같은 일화가 한 평론가를 '사람' 으로 만나게 한다면, 인공어.민족어 등 개념적 비평문들은 이 '평론가' 를 만나는 데 한결 유효하다. 호출기와 휴대폰과 흡혈귀와 서커스같은 요소들이 등장하는 요즘 소설에 대해 저자는 곧잘 "한국어가 아니라 인공어로 쓰여진 작품" 이라고 표현해왔다.

잊혀진 토박이말을 찾아내 그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 국문학의 주요 기능이라고 생각해온 이들에게는 '인공어' 운운이 다소 당혹스럽게 들리는 것도 사실.

김교수는 "근대 국가의 표준어 역시 국가가 강제한 일종의 인공어" 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 역사에서 토착어가 일제 식민통치권력 - 독재권력으로 이어진 국가권력의 공인 언어에 맞서는 문학적 역할을 해낸 특수성에 주목하면서도, 이제는 그같은 역사적 특수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본다.

주와 객, 혹은 문학사가와 비평가의 대화체나 이른바 '습니다' 체 등 그가 시도하는 다양한 문체 역시 "새로운 얘기는 새롭게 써야한다" 는 주장에서 나온 것이다.

'악문 (惡文)' 이란 평도 적지 않지만 그는 아름다운 글을 쓰려는 생각은 없다. 아름다운 문장,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문장이 옹호하는 것은 헤겔식의 '동일성의 철학' 의 세계, 다시말해 기성의 완결된 세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