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외신기자클럽을 찾는 행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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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서울외신기자클럽은 요즘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국 정부의 개혁노력에 대해 정부 부처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이 앞다퉈 외신기자 대상 오찬간담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해외홍보를 역설하는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특별히 주문했다는 관측도 있지만 어쨌든 이들 참석 연사들은 한결같이 성의있게 한국의 개혁 노력을 외신에 설명한다.

또한 금융감독위원회를 포함한 6개 경제부처는 새로 외신 대변인제도를 두어 대폭적으로 해외홍보를 강화했다.

재정경제부는 미국의 홍보 회사인 버슨 앤드 마스텔러 (Burson & Marsteller) 사를 고용해 한국 경제의 현황을 전세계에 홍보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자신들의 구조조정을 알리기 위해 각종 간담회나 기자회견을 주최해 서울 상주 외신기자들을 바쁘게 한다.

1년 전과 비교하면 혁명적인 변화다.

97년 말 외환위기가 결국 투명성 없는 정부 및 기업정책에 따른 한국의 대외 신인도 추락에 따른 것이고 보면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다.

사실 서울 상주 외신기자들은 재작년말까지만 해도 폐쇄적인 정보 정책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외환보유액 및 부실채권 등 중요한 경제 지표들이 국가 이익에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이면 비밀에 부쳐졌다.

국내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중요 기사를 확인하기도 어려울 때가 많았다.

심지어 정부나 기업의 일상적 뉴스브리핑에 참석을 거부당하는 사례까지 있었다.

그러나 지난 한 해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의 해외홍보에는 미진한 점이 많다.

더욱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해외에 알리는 하드웨어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이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즉 홍보 마인드는 아직도 빈약하다.

홍보란 과대 포장.미화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정보로 올바른 평가를 받는 것이라는 점이 자주 망각된다.

최근 경제 회복 조짐에 대해 과도하게 장밋빛 홍보를 하는 것도 약간은 위험스러워 보인다.

또한 아쉬운 것은 외신의 특수성을 파악하지 못해 겪는 시행착오다.

외신의 생리는 국내 언론과는 상이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기사 마감시간도 현저히 다르고 뉴스에 대한 엠바고 제도 역시 판이하다.

특히 외국 통신에 있어 속보성은 국내 언론에 비해 훨씬 강조된다.

기사작성에 있어서도 더욱 포괄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외신이다.

단순히 한국 언론을 위한 보도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해선 효과적인 해외 홍보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역시 가장 효과적인 해외홍보 방안은 꾸준한 성실성이다.

상황이 좋을 때만 반짝이는 단기성 홍보보다 장기적인 전략을 통한 이미지 관리야말로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다행히 지난 1년간의 제반 홍보 노력의 결과로 한국의 대외 신인도는 현저하게 개선됐다.

특히 금융개혁에 대한 성공적 대외 홍보는 한국의 신용등급 상승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상황 여부에 따라서 이러한 긍정적 외신 논조는 언제라도 변할 수 있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나타난 것처럼 외신들은 때로는 가혹할 정도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서울외신기자클럽을 찾는 한국 정부관리나 기업인의 행렬은 좀더 계속돼야 할 것 같다.

이병종 뉴스위크 서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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