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동 스케치] 참모들 '파국은 없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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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 (YS) 전대통령이 반나절만에 기자회견을 자청했다가 취소했다.

○…8일 오후 11시15분쯤 표양호 비서는 상도동 자택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기자회견을 연기한다" 고 발표했다.

기자회견 연기에 대해서는 "참모들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했다" 고 했다.

金전대통령의 호출을 받았던 참모진은 모두 기자들을 피한 채 입을 닫고 돌아갔다.

이날 상도동에는 긴급 연락을 받은 YS 퇴임시 청와대 참모진이 총집결했었다. 한 참석자는 "참석자 전원이 金전대통령의 회견을 말렸다" 고 전언. 그는 또 "하더라도 내용을 다듬고, 정국추이를 지켜본 뒤 하자" 고 진언했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구수회의 직전 " (기자회견) 시기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전직 대통령인데 파국으로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 말해 당초 YS가 구상한 회견 내용이 상당히 공격적이었음을 시사했는데 실제 회의에서도 이런 우려가 주류를 이뤘다는 것. 참모들은 밤 12시가 돼서야 회의를 마치고 차례로 상도동을 떠났다.

○…오후 5시30분쯤 이원종 (李源宗) 전정무수석을 필두로 5분에서 15분 간격으로 이영래 (李永來) 전 행정수석.김용태 (金瑢泰) 전 비서실장.김광일 (金光一) 전 정치특보.유도재 (柳度在) 전 총무수석.조홍래 (趙洪來) 전 정무수석 등이 속속 도착. 문정수 (文正秀) 전 민정수석.김정남 (金正男) 전 정책수석.신우재 (愼右宰) 전 공보수석.김광석 (金光錫) 전 경호실장도 들어왔다.

김기수 (金基洙) 비서관도 배석했다.

신상우 (辛相佑) 국회 부의장과 박관용 (朴寬用).김덕룡 (金德龍).박종웅 (朴鍾雄) 의원 등 한나라당의 민주계 현역 의원들은 초청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해석이 분분했다.

주변에선 "YS가 현실정치의 파워게임 차원보다 철저하게 전직 대통령의 입장에서 기자회견에 임한다는 뜻이 아니겠느냐" 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YS는 청계산 등반 직후 여권과 의사소통이 깊은 신상우 부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9일 중 기자회견 계획을 알렸다.

○…한편 장재식 (張在植.국민회의) 청문회 위원장은 박태준 (朴泰俊) 자민련 총재를 급히 만나 YS의 기자회견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는 등 여권은 여권대로 분주히 움직였다.

YS의 기자회견 연기와 여권의 '노력' 간에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전영기.이정민.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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