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힘]시청률보다 무서운 시청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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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주부 이정주 (李政珠.37.서울양천구목동) 씨는 지난 주말 내내 TV 만화영화와 씨름했다.

李씨는 TV 중독자도 아니고 만화영화광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귀중한 휴일을 만화에 반납한 이유는 그가 시청자 운동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02 - 737 - 0061) '어린이 영상물 모니터 모임' 의 핵심 멤버인 李씨는 회원 20여명과 함께 지난해 12월부터 케이블 TV의 만화영화들을 분석해왔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만들어 조만간 종합유선방송위원회에 전달할 예정이다.

시민의 힘이 어떤 권력보다 무섭다는 것을 웅변하는 NGO 분야가 시청자 운동이다.

주로 주부들 중심으로 전개돼온 이 운동은 점잖은 항의전화에서부터 집단시위.법정투쟁까지 다양한 방식을 동원, 방송사들을 견제한다.

현재 방송에 대한 공식적인 규제기관은 방송위원회. 방송위원회는 지난해 무려 1천2백여건의 징계를 방송사들에 내렸지만 별 효과가 없어 '솜방망이' 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시청자 단체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지난해 활동이 두드러졌던 서울YMCA의 경우를 보자. 우선 KBS '국악한마당' 이 심야에 편성된데다 결방이 잦다는 것을 두달간 치밀한 감시를 통해 잡아냈다.

지난해 4월 항의성 보고서가 나온 후 '국악한마당' 은 일요일 오전으로 옮겨졌다.

또 방송3사 범죄재연프로의 폭력.선정성과 모방범죄 우려를 제기했다.

이번엔 방송사에 대한 법정투쟁을 선언하고 피해자 고발창구를 마련했다.

SBS는 '다큐 사건파일' 을 중단했고, KBS는 '공개수배 사건25시' 의 성격을 바꿨으며, MBC도 5년 넘게 방영해온 '경찰청 사람들' 을 결국 폐지했다.

시청자 운동의 매력은 활동 자체가 흥미롭고 유익하다는 점.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02 - 734 - 1046) 는 '미디어 교육 연구반' '미디어 여성정책 모임' 등 참가자의 관심사에 따라 소모임을 결성, 해당 분야 명사들의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조정하 (34) 사무국장은 "총회원 5천여명 중 남자회원도 약 30명이나 된다" 며 "누구든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다" 고 말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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