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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FDA 회의록만 챙겼어도 PPA 퇴출 3년 빨랐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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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성의 있고 꼼꼼하게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전문가 회의 결과를 챙겼다면 페닐프로판올아민(PPA) 함유 감기약의 퇴출이 3년 이상 빨라졌을 것입니다."

FDA 의약품평가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이형기(40.미국 조지타운대)교수는 식의약청의 의약품 안전 관리 수준을 한마디로 '함량미달'이라고 평가했다.

"FDA 사이트에는 PPA 성분 약품에 대한 예일대 역학조사 결과를 놓고 2000년 10월 19일 열린 전문가 회의에서 나온 모든 기록이 실려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FDA 회의록'엔 "14명의 전문가 중 13명은 'PPA 성분은 뇌출혈과 연관이 있다', 나머지 한명만 '아직 근거가 부족하므로 기다려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기술돼 있다. 이 교수는 "이 정도면 PPA 성분약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것이 당연한 결론 아니냐"고 되물었다.

다음은 이 교수가 지적한 식의약청의 문제들.

◇"해외정보 분석 제대로 하나"=이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선 1997년 통과된 FDA 현대화법과 정보자유법에 따라 FDA의 모든 규제와 관련된 서류는 서신까지도 시시콜콜하게 인터넷에 공개하도록 돼 있다. 또 회의가 열리면 속기사가 모든 발언 내용을 기록하고 이를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공개한다고 한다.

이 교수는 "FDA의 자료가 인터넷에 올려지기까지 짧게는 한두달, 길게는 6~9개월이 걸린다"며 "PPA 성분약을 다룬 전문가 회의록이 FDA 웹사이트에 처음 오른 것도 2000년 11월 초순께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성의만 있었다면 회의록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요즘은 FDA의 전문가 회의를 인터넷으로 유료 생중계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규제는 타이밍이 중요"=이 교수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약을 규제할 때는 정확성 이상으로 시의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규제 시기를 놓치면 '사후약방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알아야 결정을 내리겠다'며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학문적 측면에서는 정당할지 몰라도 국민건강 측면에선 무책임한 일입니다." 이 교수는 특히 화급한 의약품 안전 문제에 대해 반드시 국내 연구가 필요하다고 고집하는 것은 국수주의적 태도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경험이나 전문성 면에서 식의약청이 FDA에 크게 못 미치므로 자존심보다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신속한 대응 배워야"=영국은 우리의 식의약청에 해당하는 의약품보건의료품규제청(MHRA)과는 별도로 의약품안전성위원회(CSM)를 두고 있다. CSM은 2주에 한번씩 국내와 해외에서 나온 각종 의약품 안전 자료를 검토하고 MHRA에 행정조치를 권고한다. "미국에서 PPA 성분약의 판매중지 결정을 내리자 영국은 바로 나흘 뒤 자국의 의사.약사 전원에게 서한을 보내 어떤 약에 PPA 성분이 들어 있는지 명확하게 알렸습니다. 또 영국은 FDA의 전문가 회의 결과를 닷새 뒤인 2000년 10월 24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영국은 PPA 함유 감기약이 우리와 달리 14가지에 불과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약사 중심으론 곤란"=식의약청의 인적 구성이 지나치게 약사 위주로 돼 있다는 것도 이 교수의 지적사항이다. 현재 식의약청은 전체 직원 840명 가운데 의사는 2명뿐이고 약사는 159명이나 된다. 반면 FDA에선 의사가 450명이나 근무한다고 한다. 신물질의 합성이나 신약 개발의 초기 단계에선 약사의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안전성과 약효를 따지는 과정에선 의사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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