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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여고 15명 봉사대 결성 무의탁노인 수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28일 오후 한강변 당인리발전소의 높다란 굴뚝이 눈앞에 다가서 보이는 마포구당인동15번지 언덕위 작은집.

"너희들 또 왔니. 곧 개학이라 바쁠텐데…. " 정영선 (81) 할머니가 단칸방 아랫목으로 맞아들인 학생들은 홍익여고 2학년생 유혜미 (柳惠美.17) , 송윤화 (宋允化) , 유소정 (柳邵政) 양. 이달 들어 새로 연 (緣) 을 맺은 '손녀' 들이다.

鄭할머니는 이들과 함께 온 동급생 7명도 일일이 쓰다듬으며 얘기꽃을 피웠다.

"저번에 빨래하고 음식 만들 때 보니 시집 보내도 될 정도로 야무지더라. " "내가 열다섯에 결혼했으니 너희들 또래면 벌써 애어멈 되고도 남았겠다. " 이들은 동급생 정수연 (鄭守娟) 양이 지난해 말 상수동사무소를 찾으면서 봉사하는 겨울방학을 보내게 됐다.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며 찾아온 수연이에게 동사무소측은 "무의탁 할아버지.할머니 열다섯분에게 털 목도리를 선물해 보라" 고 권유했던 것. 학교에 돌아가 얘기를 하자 순식간에 15명의 '봉사대' 가 모여 1주일만에 뜨개질을 끝냈다.

이달 초 아이들은 목도리를 들고 무의탁 할머니.할아버지를 찾았다.

"몸져 누웠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보고 목도리만 걸어 드리고 차마 돌아설 수가 없었어요. " 이들은 이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매주 2~3차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방문, 빨래와 청소도 해드리고 요리도 해드렸다.

어깨와 다리도 주물러 드렸다.

"진주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혼자 떠나버리면서 홀로 되신 후의 애달픈 사연을 듣고 많이 울었어요. " (윤화) 두시간 남짓 얘기꽃을 피우다 아이들이 일어서자 鄭할머니는 "이제 개학이라 너희들도 못보겠구나.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 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꼬불꼬불 길 모퉁이를 빠져 나오면서 '정 할머니의 손녀들' 은 다짐했다.

"우리 개학해도 일주일에 한번은 할머니 찾아뵙자. " 털 목도리 뜨개질에서 시작된 홍익여고생들의 봉사활동은 겨울을 녹이며 이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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