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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청문회] 증인신문 3일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7일 국회에서 속개된 IMF 환란 조사특위에서 증인으로 나선 강경식 (姜慶植) 전 부총리와 이경식 (李經植) 전 한국은행 총재의 경제정책 실패를 따지는 의원들의 신문이 쏟아졌다.

의원들은 당시 경제의 두 사령탑이었던 이들에 대해 환란위기를 막기 위한 사전 조치 여부.경제정책팀간의 갈등을 캐물었다.

姜전부총리는 환란위기를 맞은 뒤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구조개혁을 빨리 하지 못해 모든 상황이 여의치 않았었다" 고 술회했다.

이날 청문회는 오전에 李전총재, 오후에 姜전부총리를 각각 증언대에 세웠다.

두 사람의 증언을 주제별로 모아 소개한다.

( ) 는 질문자, < > 는 답변자.

◇ 구제금융 신청 직전

- (정우택.자민련) 한은은 97년 11월 6일 '자력으로 경제회생 불능' 이라는 판단을 하고 IMF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재경원은 외환보유액으로 대외지급을 막으면 된다는 한가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었던 이유는.

<姜> "한은이 내놓은 방안은 구제금융 신청까지 가더라도 3개월이 소요되는 것이었던데 비해 재경원은 '패스트 트랙 (긴급지원)' 을 이용해 1개월밖에 걸리지 않는 더 빠른 방안이었다. "

- (정우택) 결과적으로는 위기를 막지 못한 것 아닌가.

<姜> "11월 7일 한은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 "

- (김영환.국민회의)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데 다른 의견이 있었는가.

<李> "일본에서 돈을 꿔오는 방식으로 위기를 잠시 해소하자는 강경식 부총리의 의견이 있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구제금융 신청쪽으로 가야한다고 판단했다. "

- (김칠환.자민련) IMF 구제금융을 결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李> "강경식 부총리와 김인호 (金仁浩) 경제수석, 한은 총재인 본인이 했다. 대통령에게 결재받은 사항인지는 모르지만 11월 14일 姜부총리가 청와대에 보고한 뒤 재가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

◇ 경제팀 정책실패 공방

- (김영환) 97년 10월 이후부터 경제팀간에 정책혼선을 빚었던 경향이 있는데.

<李> "나름대로 잘했다. 姜부총리의 상황인식도 크게 잘못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IMF 구제금융 신청이 지금은 자연스러웠던 것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거론하기 힘든 금기사항 같은 것이었다. "

- (정우택) 한은은 외환관리 시스템 미비로 외환위기를 초래한 책임이 있다. 단기외채 차입이 늘어난 것이 한 원인이라고 보는데.

<李> "주원인이다. 미스매치 (불일치) 는 없애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 (정우택) 재경원과 한은간에 외환정책으로 갈등을 빚은 적은 없었는가.

<李> "감독체계가 다기화 (多岐化) 돼 있었던 것이 그 원인이다. "

- (장성원.국민회의) 기아자동차 사태가 3개월 이상 해결되지 않으면서 경제상황이 크게 악화됐으며 결국 환란위기로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경제사령탑으로서 책임을 느껴야 한다.

<姜> "기아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못한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강성인 기아노조와 일부 언론.정치권.기아 경영진 등의 반발이 기아사태 해결에 장애가 된 점도 있다. "

- (김민석.국민회의) 재경원은 97년 7월 '바트화와 기아' 라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외환위기를 이미 경고했는데 이를 무시한 이유는.

<姜> "그 보고서에서 건의했던 부실채권 정리와 금융개혁법안은 이미 추진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

- (김민석) 97년 7, 8월 동남아 사태를 전혀 읽지 못했다. 완전히 상황을 오판한 것 아닌가.

<姜>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사태가 한국에 오지 않으리라고만 생각했다. "

유광종.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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