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빅딜…수출물량 '부도']등돌리는 바이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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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빅딜 (대기업간 사업교환) 과정에서 불거진 고용조정 문제가 수출에 본격적으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자칫하면 노조에 대한 해외의 인식이 나빠져 조금씩 회복되는 한국의 대외신용도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고개 돌리는 외국업체들 = 지난해부터 LG반도체 및 대우전자와의 관계를 강화해온 휴렛패커드 (HP)가 양사의 조업 중단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HP의 수입을 대행하는 한국HP 관계자는 "이달에만도 12만대의 모니터를 공급받기로 돼 있었으나 그중 일부밖에 받지 못해 지장이 크다" 고 말했다.

컴팩컴퓨터는 당초 올해에만 ▶대우전자 모니터 2억달러 ▶LG반도체 제품 4억달러어치를 구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파업이 길어지면 이중 최소 4억달러 정도가 경쟁국에 넘어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10억달러어치를 한국에서 사 쓰는 IBM도 특히 모니터의 수급불안을 우려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LG.대우측 물량을 앞으론 대만이나 국내 다른 업체에 돌리는 방안 등을 검토 중" 이라고 밝혔다.

◇ 왜 이런 움직임을 보이나 = PC산업은 부품 주문부터 생산까지 평균 1주일 주기로 돌아가기 때문에 대부분 업체에 재고가 많지 않다.

그래서 열흘 이상 부품 공급이 안되면 공장의 정상가동이 어려워진다.

현재 미국내 PC시장이 활황이긴 하지만 경쟁이 워낙 심해 부품공급이 원활치 못하면 바로 영업에 타격을 받게 돼 외국 업체들이 오래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일부 물량을 삼성.현대 등 다른 한국 업체로 돌릴 수는 있지만 PC 모니터의 경우 그나마 국내 생산능력도 충분치 않아 파업이 장기화하면 대만 등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해당 업체 피해는 = 지난 22일부터 공장이 멈춘 대우전자는 이미 5백억원 상당의 손실을 보고 있다.

특히 구미공장에서 생산하는 PC 모니터의 경우 미국 기업에 연간 2백20만대 이상 수출하는데 올스톱된 상태다.

또 해외 현지공장들도 부품을 제공받지 못해 일부 생산라인이 가동되지 않고 있다.

LG반도체는 컴팩컴퓨터.IBM.HP 등 주요 컴퓨터 업체들에 하루 50억원 규모의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지만 생산 중단으로 해당 업체로부터 추가 주문을 못받고 있는 실정이다.

남아 있던 재고도 얼마 남지 않아 기존 계약 물량조차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LG반도체 관계자는 "외국 거래선들이 더 이상 못믿겠다며 거래선을 대만으로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고 말했다.

대우전자측도 "추가 주문은 생각지도 않고 있고 이미 주문받은 물량조차 대지 못하고 있다" 며 "외국업체들에 신뢰를 잃어 장기적으로 국내 경제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 이라고 우려했다.

◇ 경쟁국 현황 = 특히 모니터 시장에서 한국과 경합하는 대만은 가격면에선 한국보다 다소 경쟁력이 있다.

한국전자산업진흥회에 따르면 대만은 한국 제품보다 개당 3달러 (15인치의 경우) 싼 것으로 나타났다.

품질.성능.애프터서비스 등 비가격 면에서도 대만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수입업자 입장에서는 어렵지 않게 거래선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민호.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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