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기업가 이종문씨, 정체된 대학 질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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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항공기 납치범과 정년이 보장된 교수의 차이는, 납치범과는 교섭할 수 있지만 교수와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점입니다."

26일 오전 정부 세종로청사 19층 강당 앞에 선 노신사가 이 한마디로 정체된 대학사회를 꼬집자 2백50여명의 청중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 노신사가 "한국이 고급기술.인력 확보를 최우선 국가 전략으로 삼지 않으면 한국의 경쟁상대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국가가 아니라 라오스.미얀마.인도네시아가 될 수 있다" 고 말하자 강연장은 한순간 물을 끼얹은 듯했다.

청중은 교육부 공무원과 대학 관계자들로, 이 중에는 이해찬 (李海瓚) 장관.조선제 (趙宣濟) 차관.김종량 (金鍾亮) 한양대 총장.박찬석 (朴贊石) 경북대 총장.노성만 (盧成萬) 전남대 총장.최송화 (崔松和) 서울대 부총장 등도 있었다.

우리 교육의 중추인 이들을 억센 입심으로 휘어잡으며 1시간30분 동안 울리고 웃긴 주인공은 재미 (在美) 기업가인 이종문 (李鍾文.72) 암벡스 벤처그룹 회장. 이날 강연의 주제는 '국가 전략으로서 고등교육과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국제경쟁력' 이었다.

李회장은 서두부터 "21세기에서는 과학기술, 즉 지적 창조력과 연구능력에 국가의 생존이 달려있는데 한국은 아직 고루하고 산업사회를 탈피하지 못한 분위기" 라며 "한국의 기술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창조력있는 연구인재를 길러내지 못한 고등교육의 탓" 이라고 매섭게 질책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에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3만여명이나 되지만 국제적인 제품.상표가 전혀 없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제대로 책을 읽지 않고 낡은 강의노트에 의존하거나 인터넷 능력이 학생보다 못한 교수들이 많은 데다 학생은 대학을 졸업해도 영어.일어 회화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 이라며 "미국 등 선진국 교수를 데려다 영어로 강의하고 프로젝트도 줘야 대학이 발전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李회장은 대학발전 방향으로 '경쟁제체 도입' 을 강조하고 대학체제를 ▶정보기술 등 첨단 과학기술 중심의 연구중심 대학 ▶법학 등 전문 직업인 양성의 교육중심 대학 ▶시민 양성기관인 교양대학 등 세 부류로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개성.개인능력이 중시되는 현대사회에서 한국은 여전히 집단성을 강조하는 유교사상 중독증에 빠져 있다" 며 "21세기 국제화.개방화된 사회에서는 여러 문화를 접하고 수용하는 잡종만이 살아남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오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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