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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조지프 테인터 '문명의 붕괴' 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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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역사란 무엇인가' 의 저자 E.H.카의 말이 아니더라도 '역사는 순환한다' 는 관점은 위기국면에서 더 설득력을 갖는다.

한 사회의 번영과 소멸. 이 매력적인 소재를 다룬 세계적인 고고학자 조지프 테인터의 '문명의 붕괴' (이희재 옮김.대원사.1만2천원)가 출간돼 관심거리다.

테인터가 주목하는 것은 번영의 한계점에서 기존질서를 해체시키는 '복잡성' 이라는 개념이다.

그에 의하면 이는 사회적 이질화와 동의어로서 그 사회는 팽창.혼란의 새로운 양상을 띠게된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사회적 유지비용을 증대시키고 결국에는 한계비용이 한계수익을 넘어서는 점에 다다른다.

이로부터 복잡성의 의미는 소멸하고 붕괴가 시작된다.

그것은 단순한 채집공동체뿐 아니라 거대한 제국에 이르기까지 예외없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지만 아주 복잡하게 조직된 사회일수록 붕괴의 속도는 더 급작스럽다.

저자가 진단하는 첫 조짐은 사회의 기본 틀을 유지하는 권력인 중앙으로부터의 이탈현상이다.

이 때를 기해 중심권력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주변으로 이탈하려는 사회집단의 움직임이 가시화한다.

함께 드러나는 붕괴의 요인들은 ▶갈등.모순.과오의 상황반복 ▶사회적 기능의 마비 ▶신비주의적 요소 대두 ▶우연적 사건의 누적적 악순환 ▶종국에는 경제로부터 시작하는 파멸 등.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서술하는 서로마제국.마야제국, 그리고 차코사회 (뉴멕시코 북서부 산후안 분지의 문명사회) 의 붕괴과정은 실로 정밀하고 분석적이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붕괴와 문화의 상관관계다.

테인터는 문명이라는 단어를 폐허와 접목시키길 즐기는 세인들의 습관을 먼저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역동성을 갖는 '문화' 의 곪아터진 형식이 바로 '문명' 이라는 분석가들의 지적을 거론한다.

역사학자 슈펭글러의 말로는 "오늘날 예술활동은 무기력과 허위에 불과하다" 는 것. 저자는 또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재화생산에 투입돼야 할 자원이 예술이나 지식분야에 전용될 때 체제는 약화.붕괴의 길을 걷는다" 고 말하고 있다.

부패와 퇴폐성으로 인한 '문화적 피로' 는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그러면 저자는 오늘 (현대) 의 붕괴론에 대해 어떤 관점을 취할까. 그는 "붕괴는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문명의 생성을 의미한다" 는 사회학자 피트림 소로킨의 말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클의 "과학적 진보가 이뤄질 때마다 더 힘든 과업이 나타난다" 는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는다.

"어차피 인간사회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만들어진 조직이다.

닉관/비관론의 향방은 지금 우리에게 유예된 시간의 활용여부에 달려 있다.

" 테인터 문명론의 강점은 토인비 (역사의 연구).슈펭글러 (서구의 몰락).헌팅턴 (문명의 충돌) 과는 달리 주관적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이면서 냉철한 분석의 잣대를 들이대는 점이다.

이는 저자가 광범위한 독서력을 바탕으로 사회과학 전분야 4백50명에 달하는 학자의 글을 인용하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그러면서 그는 동료 고고학자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지식의 생산은 뒷전에 두고 물리적 보상에만 관심을 두는 걸까. 아니면 세인들의 지적대로 상상력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한량일까."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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