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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세상보기]어느 법률상인의 하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어느 법률상인의 사무장이 전화를 건다.

"어이 김계장 새해 복 많이 받으슈. 그런데 뭐 큰 거 한건 없수?" "사무장님 안녕하슈. 그런데 정말 큰 건이 하나 있소이다. 유일 야당의 총재가 비밀침해와 특수절도 혐의로 고소된 것 아시죠. " "아니 어쩌다 그런 일이?"

"국회 529호실이 안기부 정치사찰 분실이라는 심증을 잡고 망치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서류를 훔쳐 갔답니다. 안기부에선 펄펄 뛰며 이런 국법 문란 행위는 단연코 법적인 제재를 가하겠다며 고소장을 냈답니다. "

"거 군침 도는데, 어이 김계장 그 사건 나에게 주쇼. 내 소개비는 두둑히 드리리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는데 아무리 한나라당 사정이 그렇기로소니 자기 당 총재를 건져줄 돈이 없을까. 어이 김계장 피고소인이 얼굴이 노랗게 돼 어디 유명한 변호사 없느냐고 물으면, 알죠?어떻게 대답하는지…. " 다음날 또 전화를 건다.

"어이 박계장 요즘 왜 뜸해. 뭐 큰 거 한건 없수?" "진짜 큰 것이 있는데, (쉿!) 안기부장이 고발된 것 모르시죠. " " (쉿!) 아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 분이 고발을 당하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국회 529호실에서 나온 안기부 문건이 정치관여를 금지한 안기부법을 분명히 위반한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고발을 해왔습니다. 한나라당은 지금 죽을둥 살둥 이 사건에 매달리고 있어서 형세가 만만치 않은 것 같습디다. "

"거 참 군침 도네. 어이 박계장 혹시 피고발인 쪽에서 얼굴이 새파랗게 돼 변호사를 찾으면, 알죠?어떻게 가르쳐주는지. 안기부 예산은 잘 모르지만 자기네 부장을 구출할 돈쯤이야 넉넉하겠지. 그리고 박계장 이따 그 룸살롱으로 나와. "

돈을 밝히는 법률상인이란 것이 이렇게 큰 사건에만 매달리는 배짱 좋은 변호사들이라면 그래도 덜 밉겠다 (이것도 사실 말은 안되지만) .그러나 정작 법률구조가 절실히 필요하고 막대한 재판비용을 댈 수 없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면 그 나라의 법질서는 단단히 고장난 것이다.

이런 고장은 이미 오래 전에 나 있었고, 의정부사건에서 대전사건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고 모두들 개탄하고 있다.

그런데도 변호사 비리의 원인이 된다는 전관예우 (前官禮遇) 를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소개비 관행을 뿌리뽑자는 도덕적 분발도 찾아 볼 수 없다.

대전사건도 일과성 태풍으로 넘어갈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죄의 유무나 경중을 가리는 일은 앞으로도 유전무죄 (有錢無罪) 무전유죄 (無錢有罪) 의 원리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이 세상에 죄인된 자 (사람은 누구나 털면 먼지가 난다!) 어찌 돈을 쓰지 않고 배길 수 있나. 또 그렇다면 이 세상에 변호사 된 자 어찌 돈을 벌지 않고 배길 수 있나. 변호사 윤리장전은 불기중정 (不羈中正) 을 강조하지만 (불기는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중정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음) 그러나 지금은 돈에 매이고, 돈 있는 쪽에 치우치는 것 같다.

좋은 대학 나와 어려운 시험 합격하고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는데 그가 하는 일은, 시민단체의 피켓에 의하면, 양심을 팔고 사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앞으로 혼 좀 나겠지, 믿어 본다. (머지않아 부정방지 전문가가 변협 (辯協) 회장이 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악어와 악어새는 한데 얽히고설켜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넘어갈 것 같다고 믿는 사람은 최후로 기댈 데가 한군데 있다.

송강 (松江) 정철 (鄭澈) 할아버지의 충고를 따르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스라/사람이 되어 나서 옳지곳 못하면/마소를 갓 고깔 씌어 밥먹이기나 다르랴.

김성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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