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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개혁위,EBS 교육부서 독립 추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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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근 방송의 선정.폭력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런 비난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는 방송사가 있다. 바로 EBS (원장 박흥수) 다.

다른 방송사들 입장에서 보면 EBS는 여간 밉살스런 존재가 아니다. 방송사들의 방어논리에 번번이 '고춧가루를 뿌리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방송위원회 징계. 지난해 방송3사는 모두 수백건씩 징계를 받았다. 방송사측은 징계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방송위원회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 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한데 지난 1년간 EBS가 받은 징계는 불과 3건. EBS 김준한 교육제작국장은 "정석대로 만들면 방송위 징계를 받을 이유가 별로 없다" 고 말한다.

예산 문제도 마찬가지다. 18일 KBS 박권상 사장은 "영국BBC에 견주어 예산이 너무 적다" 며 시청료를 2~3배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EBS는 KBS 예산의 10분의 1도 안되는 돈 (98년 6백89억원) 으로 지상파 1개.위성방송 2개.FM 1개 채널을 꾸리고 있다.

그렇다고 EBS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EBS엔 보석 같은 프로들이 즐비하다. 라흐마니노프.푸르트벵글러 같은 전설적인 음악가들의 생존 모습 등 귀중한 필름을 보여주는 음악다큐 '바흐에서 바르톨리까지' , 우리나라 토론 프로의 새 장을 개척한 '생방송 난상토론' , EBS의 장인정신이 듬뿍 배인 자연 다큐멘터리 등은 TV가 때론 '천재 상자' 일 수도, '건강 식품' 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EBS가 극히 적은 예산으로 고품질을 유지하는 비결은 '고난' 의 20년간 쏟았던 땀과 눈물에서 찾아야 한다.

81년 KBS (사회교육제작) 와 한국교육개발원 (학교교육제작) 이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KBS - 3TV로 전송하는 형태로 탄생한 EBS는 90년 KBS에서 떨어져 나온 뒤로 줄곧 정부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프로를 공급하는 것만이 EBS의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종사자들의 인식도 큰 힘이었다.

EBS종사자들은 먼저 세계로 눈을 돌렸다. 각국의 우수한 다큐.교양물을 타사 교양프로 제작비의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확보했다. 직접 제작의 경우도 비용을 이만저만 쥐어짜는 게 아니다.

초창기 유아프로 '딩동댕 유치원' 세트 제작비가 없어 겨울에도 야외에서 찍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제 곧 EBS의 위상이 달라진다.

방송개혁위원회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 중이지만 교육부 산하를 벗어나는 것만은 분명하다. 독립 이후 예상되는 첫 변화는 '이제서야' 시청자가 내는 수신료의 일부가 EBS로 돌아가는 것. 다음으론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기대된다.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잘 듣고 있는 EBS가 교육부 울타리를 벗어난 이후 현재의 모순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 하지만 예산이나 위상에서 안정을 찾은 이후에도 EBS가 건강함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없는 것은 아니다.

EBS 기획조정실 임정훈 부장은 "우리도 사실 그런 우려를 않는 것은 아니다" 면서 "하지만 기존 방송사의 관행을 답습한다면 결국 우리에게 피해가 돌아올 걸 잘 알고 있다" 고 말했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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