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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 용어까지 등장 … 장관·차관 ‘예산 마찰’ 국방부에 무슨 일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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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육군 대장 출신인 이상희(64) 국방부 장관과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장수만(59) 국방부 차관 사이에 마찰음이 터졌다. 내년 국방예산 삭감 문제를 놓고서다. 이 장관은 25일 최근의 예산 삭감 움직임에 강한 톤의 반대 입장을 담은 서한을 청와대의 정정길 대통령실장, 윤진식 경제수석,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전달했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왼쪽 둘째)이 내년도 국방예산 삭감 움직임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항의서한을 청와대와 기획재정부로 보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장관이 26일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 이전 기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헬기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방부는 당초 내년 증가율을 7.9%로 잡은 30조7817억원의 예산안을 청와대에 제출해 놓고 있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그러나 “이달 초 장수만 차관이 이 장관에게 보고를 하지 않고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3.4~3.8% 증가로도 충분하다’는 취지의 예산 삭감안을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장 차관이 윤 수석에게 삭감안을 보고한 뒤 이 장관에게는 정확하게 사후 보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이에 따라 이 장관은 다른 채널로 장 차관의 청와대 보고 내용을 확인했고 추후 장 차관이 이 장관에게 이 부분에 사과를 했다”고 전했다.

예산이 결정되는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이 장관이 ‘예산 고수’를 위한 서한을 작성해 청와대와 재정부 장관 등에게 보냈다는 얘기다. 이 장관은 특히 서한에서 “차관이 단독으로 청와대와 국방예산을 협의한 행동은 자칫 일부 군인에게는 하극상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 장관은 소신이 뚜렷한 강성 스타일로 기율을 중시한다. 장 차관은 경제부처(재경부·재경원)에서 잔뼈가 굵은 네 번째 민간 출신 국방부 차관이다. 2007년 이명박 후보의 경선 캠프에 합류한 뒤 현 정부 출범 후 조달청장에 발탁됐었다.

지난 1월 국방부 차관으로 옮긴 장 차관은 지난달 25일 국방부 예산 관련 워크숍을 주관하면서도 “줄일 것이 있으면 줄여야 한다”고 자신의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2020년까지의 국방개혁을 위해 621조원을 투입하기로 한 노무현 정부 때의 ‘국방개혁 2020’ 예산을 지난 6월 599조원으로 줄이는 데도 핵심 역할을 했다. 장 차관은 청와대 보고에서 지난해에 비해 11.5% 증액 편성된 내년도 방위력 개선비도 5.5%로 줄이는 안을 제시했다. 방위력 개선비는 주로 무기 등을 확보하는 예산이다. 어려워진 경제상황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제 논리를 우선시한 모양새다.

안보 논리를 내세운 국방부 측의 불만은 거셌다. 국방부 관계자는 “예산 증가율이 3.8%로 낮아지면 장병들의 병영생활관 현대화와 군 의무체계 개선 등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부서 내 분위기를 대변했다. 육군 대장 출신인 민주당 서종표 의원도 “60만 군의 심장인 국방부에서 군의 생명인 상명하복의 질서가 무너졌다”며 “국가안보를 경제논리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그러나 “경제관료 출신인 차관이 예산을 편성하고 조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부서 내에서 자체 조율했어야 될 일을 갖고 청와대에 서한까지 보낸 장관의 대응방식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각 부처가 제출한 예산안의 평균 증가율이 4.9%인 상황에서 국방예산만 어떻게 7~8% 늘릴 수 있겠느냐”고 언급했다. 장 차관은 “군을 위해 일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겼을 뿐”이라며 “달리 할 말은 없다”고 말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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