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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젊음 17인, 이들의 상상력은 한식의 미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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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week&이 3월 신설한 ‘셰프배틀’의 슬로건이다. 세계는 이미 ‘셰프의 시대’. 이제 한국의 셰프들도 세계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뭔가 뛰어놀 장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에 엄숙한 시합이 아니라 게임하듯 즐기는 ‘배틀’ 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배틀의 형식은 간단하다. 30대의 젊은 셰프가 주어진 주제에 따라 기존의 레시피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만의 독창적인 레시피로 승부를 벌이는 것이다. 제작 의도는 간단했지만 참가 셰프들에겐 간단한 일이 아니었던 듯했다.

“배틀 준비하는 1주일 동안 1년치 공부는 다 한 것 같아요.”

배틀장에 나온 셰프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다. 이들의 눈은 모두 충혈돼 있었고, 모두 3~4일은 밤을 샜다고 했다. 배틀 일주일 전에 주제 재료가 통보되는 터라 그 짧은 기간 동안 피말리게 레시피 개발을 했다는 것이다. 1회 배틀에 참가했던 롯데호텔 이현진(29) 셰프는 “연습용으로만 재료인 냉이를 30㎏ 사용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처럼 참가 셰프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상금이나 상품이 걸린 것도 아닌데 그들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엄청났다. 이 때문에 배틀 당일 두 개의 게임이 끝나면 요리도 안 한 담당 기자 등 스태프들이 오히려 녹초가 될 지경이었다.

이들의 열정은 놀라운 요리들로 드러났다. 심사단도 “승패를 가리는 것 자체가 미안하다”고 할 정도로 창의적인 작품들이 쏟아졌다. 이 때문이었을 거다. 승자와 패자가 갈려도 누구도 고개 숙이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웃었다. “동료들과 밤새워 우리만의 메뉴를 만든 추억을 잊지 못하겠다”며 배틀 자체를 즐겼다.

그동안 모두 아홉 번의 배틀이 있었고, 기권을 한 팀 외에 17개 팀이 참가했다. 이 중 무승부까지 포함, 10명의 셰프가 승리를 거뒀다. 이들의 ‘출신성분’은 다 달랐다. 프랑스나 미국의 유명 요리 학교에서 공부한 해외파가 있는가 하면, 대학 조리학과나 학원에서 배운 뒤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한 순수 국내파도 있었다. 하지만 ‘열정’만큼은 해외파·국내파가 다르지 않았다.

셰프배틀은 다른 매체와 관련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요리 관련 케이블 채널 관계자들로부터 “셰프 관련 프로그램을 신설하려 한다. 훈남 셰프를 소개해 달라”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배틀을 취재하고 싶다고 요청해 왔다. 모 방송사엔 셰프배틀과 비슷한 내용의 프로그램도 생겼다. 첫 기사가 나가자 배틀 형식에 부담을 느껴 참가를 고민했던 업체들의 출연 요청도 잇따랐다. 일부 셰프들에겐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고 한다.

내달부터 ‘승자의 대결’

이제 셰프배틀은 2라운드로 돌입한다. 9월부턴 승자들끼리 맞붙는 ‘승자의 대결’이 펼쳐진다. 주제도 바뀐다. 1라운드에선 요리 재료가 주제였던 반면 2라운드에선 ‘스토리’가 주제가 된다. week&은 젊은 셰프들에게 도전 의지를 불태우고, 그리하여 세계에 이름을 떨칠 셰프들을 발굴하고, 더 나아가 이들이 ‘한식세계화’의 주역이 되는 날까지 도전의 장을 만들 것이다.

이가영 기자



셰프들의 창의성은 언제나 심사단과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음식들이 나왔고, 그들의 상상력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심사단과 스태프들의 할 말을 잃게 만든 음식들이 있었다. 음식의 창의성과 맛에서 상상과 기대감을 훨씬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스태프들이 꼽은 최고의 음식 5걸은 이렇다(게재일자 순).

오, 놀라운 맛 베스트 5

① 냉이 파나코타 이현진 셰프│롯데호텔 서울

파나코타는 원래 크림으로 만든 이탈리아식 디저트다. 여기에 서양식에선 쓰지 않는 냉이를 퓌레로 만들어 섞어서 새로운 디저트를 만들었다. 냉이향이 확 퍼지면서도 부드럽게 입안에 감도는 그 맛은, 한마디로 ‘냉이의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자아냈다.

② 바나나떡 정병운 셰프│JW메리어트호텔

단호박으로 색을 낸 노란색 바나나 모양 떡의 첫 느낌은 ‘예쁘다’였다. 한입을 깨무는 순간, 도처에서 ‘우와~’ 하는 감탄이 나왔다. 바나나로 만들어 넣은 소는 기존의 떡소와는 질감도 맛도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우리는 이를 ‘떡소의 혁명’이라고 불렀다.

③ 안심스테이크와 수삼떡갈비구이 이상훈 셰프│르네상스호텔

배틀 동안 심사단을 그렇게 오래 침묵하게 한 음식은 없었다. 깻잎페스토를 발라 구운 안심과 수삼떡갈비 모두 이전엔 맛본 적이 없는 맛을 냈다. 고기가 좋은 거냐, 솜씨가 좋은 거냐로 설전이 오갔다. 결론은 ‘고기 고르는 안목도 솜씨’라는 것이었다.

④ 고구마 크레뫼 장윤석 셰프│플로라

겉보기엔 고구마 퓌레로 만든 케이크에 초콜릿 옷을 입힌, 초코파이처럼 생긴 고구마케이크였다. 한데 여기에 하나를 더 넣어 맛의 차원을 달리했다. 한산소곡주였다. 이 전통주와 고구마·초콜릿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서로 시너지효과를 냈다.

⑤ 고등어조림 이창현 셰프│제주 해비치호텔

접시 위엔 고등어조림이 없었다. 그저 얌전한 고등어롤 세 조각이 있었다. 한데 맛을 보니 고등어조림이다. 조리고, 굽고, 찌는 세 가지 조리법을 한 요리에 담았고, 고등어조림 국물을 소스로 활용한 것은 창의력의 절정을 보여줬다. 물론 맛도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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