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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방송권역제한 풀때 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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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방송은 정신적 불량 식품' 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최근 방송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곱지 않다.

90년대 이후 출범한 케이블 TV.민영방송에 이어 올해 2개 위성이 발사되면서 1백여개로 늘어나는 채널 등 방송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양적으로는 팽창했으나 시청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질적인 면에서 부족하기 때문이다.

스타TV.CNN.NHK 등 무수히 많은 외국 채널이 위성을 통해 우리의 안방에 들어온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전파를 타고 밀려드는 수많은 콘텐츠를 통해 시청자의 눈은 엄청나게 높아졌으며 이제 과거와 같은 낡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시청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한때 방송 면허가 돈 찍는 면허라고 인식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전파만 탄다고 시청자들이 봐주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승부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개혁위원회의 출범은 더욱 그 의미가 크다.

새로운 시대, 달라진 방송환경, 높아진 시청자의 요구에 적합한 방송정책을 생산하는 막중한 임무가 방송개혁위원회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과 함께 탄생한 지역민방은 기존의 방송환경에 새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됐다.

시청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지역문화와 지역정보.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그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중앙 중심의 경제 구조와 취약한 지역 경제 기반은 지역방송의 생존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더구나 97년말 갑자기 불어닥친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는 가뜩이나 취약했던 지역 경제를 뿌리째 흔들어 버렸고 그에 따라 지역 민방의 존립 기반마저 무너뜨리고 말았다.

현재 8개의 지역 민방중 TV를 제외한 7개의 민방은 전체 방송시간의 85~90%를 SBS 프로그램 동시 재송신으로 채우고 있다.

사실상 SBS의 지방 네트워크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국민의 정부가 지역민방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방송권역 확대는 고사상태에 있는 지역 민방의 숨통을 터주었다는 면에서 환영할 만하다.

협소한 방송권역을 인근 지역으로 확대하는 것은 시청자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측면에서도 올바른 정책방향이다.

위성을 통해 전세계가 단일 시청권화된 마당에 국내방송만 권역을 제한한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 국내 방송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다매체 다채널시대가 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 방송환경은 중앙방송 3사의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앙방송 3사가 방송광고 시장의 94%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은 사실상 다른 방송이 들어설 여지를 차단하고 경쟁 자체를 막는 것이나 다름없다.

방송에도 시장 경제원리가 도입돼야 한다.

자유롭게 방송하고 시청자가 선택하게 함으로써 저질의 프로그램이 도태되고 양질의 프로그램이 양산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앞으로 방송산업은 제약이나 규제가 아니라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국제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방송권역 확대는 바로 달라진 시대의 요구다.

이주혁 인천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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