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킹 양용은 아버지 양한준씨 “골프 시작하고 가방 하나 사주지 못해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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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은의 부친 양한준씨(右)가 지인들에게 축하전화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17일 끝난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양용은(37). 농사나 지으라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19세 때 골프에 입문해 세계 정상에 오른 경우다. 아들을 뜯어말렸던 아버지 양한준(64·농업·사진)씨는 어떤 심정일까.

지난 20일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양씨의 집을 찾았다. 양씨는 대낮에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더덕 농사를 짓는 양씨는 “땡볕 아래서 일을 하다 보니 너무 더워서 몸을 씻었다”고 말했다. “아들이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이제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양씨는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건 내 아들이지 내가 아니다”며 “팔다리가 멀쩡한데 왜 집에서 노나. 제주도 사람은 움직일 힘만 있으면 자식 신세를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씨는 아들이 우승한 뒤에도 평소처럼 아침 6시면 밭에 나가 저녁 때까지 일을 한다고 말했다.

TV를 통해 아들의 경기 장면을 세 차례나 봤다는 그는 “나는 US오픈만 큰 대회인 줄 알았지 다른 메이저 대회가 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용은이 기사가 난 신문을 딸이 몽땅 갖다 줬는데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는지 신문을 통해 처음 알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3대 독자인 아버지 양씨는 17세에 결혼을 했다.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혼자라고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싫어 일찍 결혼해 8남매를 낳았다. 처음에는 자식들이 많아 좋았지만 애들이 크면서는 후회했다는 그는 “지금껏 두부 장사, 고춧가루 장사, 기름 장사, 농사일 등을 하며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자식들을 풍족하게 해주지 못했다. 특히 용은이가 골프를 시작했을 때 가방 하나 사주지 못한 게 한이 된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자식 자랑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양씨는 “용은이는 개구쟁이였지만 한 번도 부모 속을 썩인 적은 없다. 말이 없고 침착한 편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당 차고에 세워져 있는 RV 차량(싼타페)을 가리켰다.

“2006년 유러피언 투어 HSBC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아들이 사준 차다. 처음에는 외제차를 사준다고 했는데 유지비가 비싸다고 해서 국산차로 샀다. 좋은 일에 쓰라며 현금 1000만원도 보내줬다”며 자랑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양씨의 휴대전화는 계속 울렸다. 언제 마을 잔치를 열 것인지 주위 사람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양씨는 “용은이가 처음 프로가 된 뒤 ‘아버지 마을 잔치 한번 하시죠’라고 하기에 ‘그래, 그까짓 것 하나 못하겠느냐’며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마을 잔치를 했다. 그런데 생명을 죽여서 그런지 5년 동안 용은이의 성적이 영 신통치 않았다. 그래서 HSBC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엔 마을 잔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번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씨는 “돈은 3대를 가지 못하지만 남을 도와주는 것은 영원히 기억된다”며 “나중에 제주도에 조그만 골프연습장 하나 지으라고 했다. 가정 형편 때문에 골프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지원해 ‘제2, 제3의 양용은’을 육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문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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