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碩學과 石學의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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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석학 하면 학식이 많은 사람, 아는 것이 많은 사람, 학문이 뛰어난 사람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국어사전을 들춰봐도 석학 (石學) 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런데 필자는 며칠 전 우연한 자리에서 석학임을 자처하는 사람을 만났다.

서로 주고 받는 초면 인사에 자신을 석학이라고 소개하는 그가 주제 넘어 보이기도 하고 일면 팔불출인가 싶기도 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자 그는 낌새를 알아차렸다는 듯 너털웃음을 짓더니 "돌 석 (石) 자 배울 학 (學) 자 석학입니다" 라고 토까지 다는 것이었다.

그는 돌산을 가진 아버지 덕에 돌산 동네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돌 팔아 마련해 준 학자금으로 도시로 나와 유학생활을 했다.

채석이나 석제 기술이 기계화되기 이전이었기에 그는 고향에 내려가면 자연히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소리며 정과 망치로 돌을 깨고 다듬는 현장을 체험하곤 했다.

그리고 직접 돌을 깨고 다듬어 석상을 만들기도 했고 정으로 돌을 쪼아 글자를 새기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가 터득한 돌철학이 있었다.

그것은 돌은 변치 않는다는 것, 정과 망치를 든 사람의 의지와 기술을 따라 원하는 작품이 빚어진다는 것, 돌은 단 한 조각도 버릴 것이 없다는 것, 그리고 돌산은 북풍한설이나 광풍노도에도 요동하지 않는다는 것 등 돌에서 받은 영향이 컸다.

그러나 그가 대학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후, 그리고 역사의 변동과 정치 소용돌이의 언저리를 지켜보면서 역겨워했던 일들 중 하나가 소위 석학 (碩學) 들의 행태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후조성 (候鳥性) 정치인들의 행보는 그러려니 이해한다 치더라도 소위 석학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태야말로 꼴불견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궤변이 두뇌가 명석하지 못해 석학이 못 된 콤플렉스일 것이라는 얘기도 했다.

그는 무책임한 석학, 후조성 석학, 사회 공동체의 역기능적 역할을 주도해 나가는 석학들보다는 돌을 깨는 석학 (石學) 쪽이 훨씬 더 순기능적 존재들이라는 말로 자신의 말끝을 맺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는 누가 석학 (碩學) 인가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늘어놓고 성토했던 석학은 과연 있는 것일까. 있다면 어떤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일까. 종교를 상품화하는 것은 세속화 못지 않게 불행하다.

지식의 상품화 역시 그렇다.

지식의 가치는 그 공익성 및 인류문명과 문화에 끼치는 긍정적 기여도로 평가돼야 한다.

그런데 인간이 소유한 그 지식 때문에 사회의 공공성에 혼란이 야기된다든지, 올바른 문화창달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런 지식이야말로 말없는 돌산보다 나을 게 없다.

그리고 때와 장소를 따라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하는 공작새 마냥 운신의 재주를 피우는 지성인들이라면 사육신 묘 곁을 지나기가 껄끄러우리라 여겨진다. 1903년 퀴리 부부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됐을 때 어느 기자가 인터뷰 도중 프랑스 정부가 당신들에게 훈장을 수여할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그때 퀴리 부인은 "과학자가 가슴에 훈장을 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의 소망이 있다면 훌륭한 연구소를 갖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한 후 곁에 있던 딸 이렌을 가리키며 "나는 이 아이가 우리의 뜻을 따라 훌륭한 과학자가 돼 주는 것이 소원입니다" 라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파트 아래층집 아이에게 "넌 이 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라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서슴없이 과학자가 되겠노라고 대답했다.

살 빠지는 약을 개발해 전세계 뚱보들의 고민을 덜어주고, 머리 나는 약을 개발해 전세계 대머리들의 머리를 나게 해 주겠노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가치관의 향배가 돈과 출세로 집약돼 버렸다.

그래서 모든 삶의 목표가 치부.성공.출세로 모아졌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태도인 양 세뇌돼가고 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가 어느날 정원을 괭이로 고르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오늘 저녁때 당신이 죽게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그가 대답했다.

"그때까지 이 정원 고르는 일을 다 끝내겠소이다" 라고. 돌 깨는 사람은 돌 다듬는 정을 놔둔 채 낚시터로 나가는 법이 없다. 책임있는 지성인은 현존현장에서 자기 소리와 자기 몫을 다해야 한다.

박종순 충신교회 담임목사

◇ 필자약력

▶59세▶장로회신학대.숭실대 졸업▶미국 풀러신학교 목회학 박사▶충신교회 담임목사 (현) ▶대한예수교 장로회총회장▶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회장▶한국기독교총연합회공동회장 (현) ▶저서 : '21세기의 도전과 성장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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