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세상에 청소년 공간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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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서울서초구 우면동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관 9층, 밤하늘에 별이 뜬 모습이 그려져 있는 사무실의 문패는 '청소년 사이버의회 준비위원회' 다.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조혜정 연세대 교수와 21~35세의 청년 8명이 일을 하는 곳이다.

프로그래머.디자이너 등인 그들의 임무는 사이버 세상에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들에 의한 공간을 만드는 것. 지난해 8월부터 작업에 들어가 지난 연말 인터넷 홈페이지 (http://cyber.youthnet.re.kr) 를 열었다.

이 사이트에 그려진 그림은 몹시 낯설면서도 반항정신 같은 게 느껴진다.

그런데 왜 홈페이지엔 내용물이 없을까. 청소년들이 직접 문화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채워넣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인디 음반 페이지에는 접속자가 '어떤 음반은 어떻느니' 하는 평가를 쓰고 만화 페이지에는 어떤 만화가 재미있다느니 하는 것과 더불어 직접 자신들이 그린 만화도 올리는 식이다.

청소년들이 만들고, 청소년들이 즐기는, 최초의 사이버 문화공간인 것이다.

여기서 얻는 커다란 부수입은 '힘' 이다. 여러 문화 장르에 대한 청소년의 평가가 모이면 당연히 시장에 영향을 미칠테고, 결과적으로는 문화적 영향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치를 반영하고 있다.

'의회' 란 이름은 바로 이런 힘을 상징하기 위해 붙인 것. '준비위원회' 라는 꼬리표의 뜻은 단지 청소년들이 의견을 개진하는 공간을 만드는 역할만 한다는 의미다.

연령으로는 그럴지 몰라도 실제로는 그들에게서 청소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난해말 정부 관리와 기자들 앞에서 홈페이지를 시연하기 앞서 청소를 할때 장학사 온다고 대청소하던 학창시절 생각이 나더라" 는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한때 이 모임을 '어른문제 대책본부' 라 부르고 자신들이 직접 벽 가득히 펑크 분위기의 그림을 그릴 정도였다.

이런 공간을 '교총회관' 이란 장소에 꾸미다 보니 건물을 쓰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뭐하는 짓이냐' 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일련의 일화가 청소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교육계의 한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믿고 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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