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우회 제안 청와대 측선 논평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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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이명박 대통령과 북한 특사조문단의 ‘30분 면담’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면담 다음 날인 24일 청와대에서는 전날 공개되지 않았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23일 면담 직후 공식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확고한 대북 원칙을 설명한 뒤 이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발표했다.

이 브리핑 내용대로 이 대통령은 ‘북한이 핵 포기와 개방을 선택하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되도록 적극 돕겠다’는 내용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을 자세하게 설명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특이한 것은 이 대통령이 ‘비핵·개방 3000 구상’ 내용 중 북한 측이 알레르기적 거부감을 보이고 있는 ‘개방’이란 단어를 일부러 빼고 대화를 나눴다는 점이다. 이는 이 대통령이 면담에 앞서 청와대와 정부의 외교안보 참모들과 조율한 뒤 결정한 사안이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대신 “핵을 포기하면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돕겠으며, 경제적 지원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세계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느냐. 이제 글로벌 시대다. 우린 북한을 도울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돼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되면 얼마나 좋아지겠느냐”는 취지로 핵 포기가 가져올 북한 발전의 청사진까지 제시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이 과정에서도 이 대통령은 북한 조문단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자상한’ 화법을 구사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핵 개발은 북한에도 도움이 안 된다. 북한 핵 문제를 그냥 두고 남북 간 경제협력 이야기만 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만큼은 단호한 어조로 전달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내 이야기를 잘 전해달라”는 말을 세 차례나 특사조문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에게 하는 등 자신의 진정성을 강조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대화는 이 대통령이 주로 말을 하면 김 비서가 이따금씩 “맞는 말씀”이라거나 “잘 전하겠다”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 다. 조문단이 전한 북한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6·15 및 10·4선언의 의미가 퇴색돼 아쉽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며 “북한은 우리와 무엇이든 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다는 자세를 구두 메시지에 담았다”고 전했다.

◆“면담에선 남북정상회담 거론 안 돼”=청와대는 24일 발표한 외교안보수석실 명의의 자료에서 “북한 조문단 면담에서는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일반적인 논의가 있었을 뿐 남북정상회담 관련 사항은 일절 거론된 바 없었다”고 밝혔다. 당초 북한 조문단은 여권 핵심 인사에게 “남북 간 당면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남북 정상 간에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뜻을 이 대통령에게 꼭 전달하겠다”며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었다.

청와대는 면담전에 이런 제안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논평하지 않았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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