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최대 무역흑자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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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해 3백99억달러의 무역흑자는 전무후무한 기록이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외환위기와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가 빚어낸 특수상황이기에 가능한 수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역수지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무역수지 흑자를 자축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 평가와 의미 = 지난해 사상 최대의 무역흑자는 외환위기 이후 수출이 40년 만에 처음 2%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35.4%나 줄어든 데 기인한다. 기업투자가 완전히 동결된데다 과도한 '거품 수입' 이 꺼져들면서 빚어진 결과다.

그러나 지난해 무역흑자가 단순히 환율효과와 수입축소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는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수출에 눈을 돌릴 틈조차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태였다.

그러나 정부의 70년대식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본격화하면서 11, 12월 두달 동안에만 78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는 막판 '몰아붙이기' 로 이같은 호성적을 거두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가 무역수지 흑자를 낸 것은 무역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지난 57년 이후 86~89년의 4년이 고작이었다. 그후 9년만에 당시 4년간 무역흑자 (1백92억달러) 의 2배가 넘는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일본 (9백억달러).독일 (5백억달러).중국 (4백억달러)에 이은 세계 4위 수준이다.

내용면에서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에서의 무역수지가 4년 만에 흑자로 반전된 것도 좋은 조짐이라는 평가다.

◇ 전망 = 대규모 무역흑자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 경제규모에 비춰볼 때 적정 흑자규모는 1백50억달러 수준으로 지나친 흑자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우선 무역흑자가 내용상으로는 수입감소에 의존한 것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에 대한 무역역조를 이유로 경쟁국들과 통상 마찰이 거세질 우려가 있다.

또 지나친 수입감소가 자칫 주요 원자재 수입 감소와 설비투자 감소로 이어질 경우 수출에 지장을 줄 수 있다.

대규모 무역흑자는 또 환율절상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같은 부담을 감안하면 지난해 한햇동안의 대규모 무역흑자를 자랑하며 축배를 들기보다 수출의 내용을 수익성 위주로 바꾸는 등 내실을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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