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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블루마운틴 수만 그루 키우는 ‘커피 문익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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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08면

향기에 먼저 취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왈츠와닥터만 커피박물관’. 각종 원두의 향, 한 귀퉁이에 놓인 커피 추출 체험 코너에서 뿜어져 나오는 커피 내음이 작은 전시실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곳으로 인디애나 존스 같은 차림새의 덥수룩한 사내가 달려왔다. 박종만(49) 관장이었다.

이경희 기자의 수집가 이야기 - 박종만 왈츠와닥터만 커피박물관장

20여 년 전. 인테리어 사업을 하던 그는 일본 출장길에 우연히 ‘왈츠’라는 커피회사에 들렀다. 공장의 문을 열자 별천지가 펼쳐졌다. 수건을 머리에 질끈 묶고 뛰어다니는 사람들, 원두를 볶아내느라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커피의 향기까지. 강렬한 커피의 이미지에 그는 매혹되어 버렸다.

원두의 개념조차 제대로 없던 1989년, 홍대 앞에 원두커피 전문점 ‘왈츠’를 열었다. 커피에 매혹되니 커피의 역사와 원류가 궁금해졌다. 배낭을 짊어지고 탐험에 나섰다. 세계 곳곳으로 좋은 원두를 찾아 헤맸다. 커피 관련 물품과 유물도 자연스레 모으게 됐다. “오래된 잔 따위를 양말이나 속옷에 싸서 짊어지고 들어왔죠. 비행기를 타면 지금도 늘 긴장해요. 혹시나 깨질까 봐.”

1 고종의 커피 스푼. 고종황제는 유명한 커피 애호가였다. 그가 쓰던 은제 커피 스푼은 한국 커피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모양은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손잡이에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이화 문양이 새겨져 있다. 2,3 아랍식 커피 절구와 포트. 중동의 사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족의 텐트에서 사용하는 커피 용구. 유목민의 단출한 세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커피 용구들이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먼저 먹기 시작한 커피는 아랍을 통해 유럽의 문명권을 비롯한 전 세계로 전파됐다.

내친김에 우리 땅에서 커피를 재배하려는 욕심까지 냈다.
“재배 산지에 가면 화가 나요. 목에 힘주는 그들을 상대로 가격과 품질 실랑이를 벌여야 하거든요.”
일본인 지인의 도움을 받아 원두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치는 블루마운틴 씨앗을 훔쳤다. 98년의 일이다. 박물관 옥상의 온실을 비롯해 실험 재배 중인 커피 묘목이 이제 수만 그루에 달한다. 아직 제대로 수확하진 못한다. 그러나 그는 현대판 문익점을 꿈꾼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가 120년에 달합니다. 100년 후에도 커피는 마시지 않겠습니까. 그때쯤이면 우리 땅에서도 커피가 나겠죠.”
‘왈츠와닥터만 레스토랑’도 100년 가는 커피집을 짓겠다는 생각으로 열었다. 14년째 처음 모습을 간직한 그곳을 향해 “돈도 많이 버는데 소파 좀 바꾸라”며 항의 글을 올리는 손님도 때로 있단다.

“일본에선 100년, 200년 된 다방이 스타벅스와 경쟁합니다. 우리나라엔 남아 있는 게 없어요. 55년 문을 연 흑백다방이 2년 전 결국 문을 닫았죠. 10년 전 메뉴판 하나 구할 수 없어요. 옛날 다방 성냥 하나가 얼마인 줄 아세요? 골동품 시장에서 20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돼요. 워낙 희귀하니까. 우리는 뭐든 버리고 치우는 걸 미덕으로 여기잖아요.”

그는 92년형 갤로퍼를 몬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갈아 치우는 게 싫단다. 옛것의 가치를 전파하는 일에도 힘쓴다. 박물관은 올 들어 매달 ‘한국 커피 역사 탐험대’를 꾸리고 있다. 젊은이들을 뽑아 한국 커피의 역사를 찾아나서는 프로젝트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다방이란 퇴폐적이고 무서운, 노인들만 오는 곳이란 편견이 깊어요. 계란 동동 띄우는 모닝커피 아시죠? 탐험대원들이 ‘마셔 보니 괜찮네’라 반응하더군요.”
그는 커피와 문화의 만남도 꾀한다. 매주 금요일, 해 진 뒤의 박물관은 클래식 콘서트장으로 변신한다. 콘서트는 벌써 170회를 넘어섰다.

“커피를 ‘장사’로 치부하는 게 못마땅했어요. 장인 정신을 가지고 가치 경영을 하는, 존경받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죠. 제가 커피로 인해 행복하게 잘사는데, 그 고마움을 갚는 방법이 뭘까. 그런 고민 끝에 박물관을 차렸고 음악회를 시작한 겁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좋은 음악을 듣고, 와인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면 더없이 행복하지요.”

그는 올해 재개관한 명동예술극장에 왈츠와닥터만 명동점을 냈다. 역사적 공간인 명동예술극장에 스타벅스나 커피빈이 들어서는 건 민족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여겨 악착같이 입찰 경쟁에 나섰다. 명동점에서는 목요일마다 클래식 연주회가 열린다.
“연주자의 땀방울이 들여다보이고, 숨소리까지 생생히 들리는 공연과 커피 한 잔. 예술의전당도 흉내 내지 못할 겁니다.”

인터뷰를 하러 간 날은 금요일이었다. 전시물들은 한쪽 구석으로 옮겨지고, 빈 공간은 무대이자 객석이 됐다. 창을 가렸던 차양이 걷히니 강과 산의 풍광이 홀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탐험가풍이던 박 관장도 이 순간만큼은 넥타이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신사로 변신했다. 결국, 음악에 취한 채 그곳을 떠났다.


중앙일보 10년차 기자다. 그중 5년은 문화부에서 가요·방송·문학 등을 맡아 종횡무진 달렸다.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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