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야당 실습1년]안팎시련에 국정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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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야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의 리더십 부재 (不在) 현상은 비단 한나라당 자신의 문제일 수가 없다.

여권에 대한 효율적인 견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이 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권의 끊임없는 '사정' 과 총풍.세풍으로 표현되는 검찰수사 칼날 앞에서 리더십을 확립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여당의 의원빼가기가 한창일때도 비명조차 지르기 벅찼을 정도였다.

하지만 여당탓만 할 수 없는 자체의 책임도 크다.

한나라당이 겪는 리더십문제의 심각성은 1년새 총재가 조순 (趙淳) - 이기택 (李基澤.총재권한대행) - 이회창 (李會昌) 으로 바뀐 데서도 드러난다.

지난 4월 전당대회에서 조순 명예총재가 총재로 재추대됐지만 결국 4개월여만에 '얼굴' 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한계가 한나라당의 고민인 셈이다.

리더십 부재의 절정은 지난 8월의 국회의장 투표. 한나라당의 자유투표 주장을 여당이 전격수용해 이뤄진 의장투표는 '한나라당내 반란' 을 대외에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趙총재 등 지도부가 사퇴, 20일간의 李대행 체제를 만들었다. 허약한 리더십은 한때 1백65석을 확보, 원내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던 의석수를 1백36석으로 낮춰놓았고 여소야대 정국의 막을 내리게 했다.

그러나 '대안부재론' 과 함께 전면에 재등장한 이회창 총재도 여권의 정계개편 속도를 늦추진 못했다. 지금 李총재는 총풍 (銃風).세풍 (稅風) 의 외풍에다 당내 비주류의 반발이란 이중고로 시련을 겪고 있다.

최근 들어선 비주류의 이탈과 반발행보가 점차 노골화하고 있으며 '이회창 총재 만들기' 를 주도했던 신주류 연대의 한축인 김윤환 (金潤煥) 의원도 등을 돌린 상태다.

金의원을 중심으로 한 TK (대구.경북) 세력의 독자화 움직임도 눈에 띈다.

'李총재 홍위병' 을 자처했던 초.재선그룹, 이세기 (李世基).현경대 (玄敬大).김중위 (金重緯).이해구 (李海龜) 의원 등 중도파 중진그룹도 李총재와 점차 거리를 두고 있다.

대여 (對與) 투쟁 등 전략부재도 문제다.

세풍.총풍공방 와중에서 중진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국회등원을 거부, 일부 초.재선그룹을 중심으로 강경 장외투쟁을 벌인 것 등을 놓고도 야당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소속의원이나 사무처직원들은 자금난을 현실적 장애로 호소하고 있다.

영남출신의 한 재선의원은 "야당이란 약점도 있지만 당 후원회에 3억원이 들어왔다는 것은 지도부가 곱씹어봐야 할 대목" 이라고 지적했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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