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지역 갈등 끝내자” 통합·화해 목소리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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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청와대 정문에 태극기가 조기로 게양돼 있다. 행정안전부는 23일까지 전국 관공서와 학교·가정 등에 조기를 달도록 권장했다. [조문규 기자]

“고인의 명복을 위해서라도 좌파니 우파니 이데올로기 싸움이나 지역감정 따위는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인이 뭘 원하는지 다들 알 겁니다. 화합으로 가는 게 그분 뜻입니다.”(20일 국회에서 조문한 송수한씨·59·서울 마포구)

“김 전 대통령이나 국민이나 나라 사랑은 하나일 겁니다. 이제 그런 마음으로 지역갈등이니 진보·보수 갈등이니 다 통합해 갔으면 합니다.”(같은 날 국회 빈소를 찾은 고병렬씨·76·서울 영등포구)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떠난 지 21일로 나흘째. 그가 남긴 빈자리를 화해와 국민통합의 계기로 삼아 글로벌·다원주의시대에 걸맞은 국가적 도약을 이루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재계·학계·문화계와 일반 시민들까지 광범위하다.

19일 공식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광장 한쪽엔 한때 ‘시민분향소’란 이름의 또 다른 분향소가 차려졌다. DJ 팬클럽 회원 등이 세운 이 분향소는 “공식분향소가 있는데 또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시민의 만류로 얼마 안 가 자진 철거됐다. 석 달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시민단체들이 덕수궁 대한문 앞에 별도의 분향소를 설치해 정부와 마찰을 빚었던 모습은 이번엔 재연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만큼은 갈등 대신 화해·화합 분위기 속에 보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도 ‘화해와 통합’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이제 투쟁적인 정치, 거리의 정치는 지양하고 근원적인 화해와 타협으로 의회가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김 전 대통령 서거로 국민통합과 소통의 필요성은 절대적인 것이 됐다. 다만 여권이 이 계기를 잘 활용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전남 시민단체들이 만든 ‘김 전 대통령 추모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지선 스님은 “1989년 고 이철규 사건 당시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폭력이 내 사상이다’라는 꾸지람을 들었다”며 “통합은 김 전 대통령이 원하고 바라던 세상”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는 그가 37일간 입원했던 병실에 이어 여야 정치권이 앙금을 털고 화해를 시도하는 용광로가 되어 왔다. DJ의 경쟁자이던 김영삼·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이미 조문을 마쳤다. 민주당도 대여 비난을 삼가고 장외투쟁을 중단했다.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는 “이 대통령의 결단은 현명했다. 이런 마당에 무슨 여야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렇게 여야가 모처럼 형성한 ‘화해와 통합’의 공감대를 서거정국 이후에도 살려 가려면 정책의 각론에서도 접점을 만드는 노력이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강대 이현우(정치학) 교수는 “DJ 서거 이후 일고 있는 화해·통합 요구는 80년대식 민주·반민주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야관계를 시대에 맞게 개혁하라는 것”이라며 “여야의 빈소 포옹만으론 안 되고, 민생경제 등 합의하기 쉬운 것부터 공조하는 게 실질적인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글=강찬호·선승혜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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