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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사 “사랑·존경했습니다” DJ에 마지막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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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사흘째인 20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천주교 의식에 따라 입관식이 진행됐다. 장의위원회는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 편히 쉬게 하실 것입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47년 동반자인 이희호 여사가 20일 남편에게 띄운 마지막 편지다. 이 편지는 DJ의 시신과 함께 관속에 들어갔다.

입관식은 이날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가톨릭 미사 형식이었다. 긴 병간호로 탈진해 링거를 맞기도 했던 이 여사는 수척해진 모습으로 며느리들의 부축을 받으며 참석했다. 유족들이 마주한 DJ의 마지막은 곱게 얼굴화장을 한 채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 무늬가 새겨진 목관 안에 누운 모습이었다. 수의는 오래전 이 여사가 준비해 둔 것이었다. 미사 내내 이 여사는 흐느껴 울었다.

미사 뒤 이 여사는 남편에게 마지막 선물을 했다. DJ와 함께한 세월을 담은 자서전 『동행』과 성경책, 손수 뜨개질해 덮어줬던 덮개와 손수건, 그리고 이 편지였다. 편지는 목이 멘 이 여사 대신 윤철구 비서관이 읽었다.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걸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하나님이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줄 믿습니다”란 대목에서 가족·측근들은 오열했다. 이어 홍일·홍업·홍걸 삼형제와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 등 비서진은 마지막 보고를 했다. 박 의원은 “대통령님을 모셨듯이 여사님을 모시겠습니다”라며 “서거하시면서 국민 통합의 길이 열렸습니다”라고 했다. 권노갑 전 고문, 한광옥 전 대표 등 동교동계 원로들도 차례로 작별인사를 했다. 장성민 전 의원은 “울음바다였다”고 전했다.

DJ의 시신은 오후 4시15분쯤 운구돼 캐딜락 영구차에 실려 세브란스병원을 떠났다. 시민 중 일부는 영구차를 어루만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영구차는 오후 4시35분쯤 국회 본청에 마련된 빈소 앞에 도착했다. 군 의장대가 영정과 시신을 빈소로 옮겼다. 지켜보던 국회의원과 당직자 사이에선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각계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오전 세브란스병원 빈소로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 정원식 전 국무총리(노태우 정부),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이명박 정부) 등이 조문했다. 국회로 빈소가 옮겨진 후엔 김형오 국회의장 등 의장단이 분향했고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뒤를 이었다.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모습도 보였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이정현·구상찬 등 친박계 의원 10여 명과 함께 조문했다. 서거 사흘째인 20일 오후 8시까지 추모객은 전국적으로 27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거물급 외국 조문단 올 듯=중국은 고위급 인사로 조문단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탕자쉬안(唐家璇) 전 국무위원을 비롯, 다이빙궈(戴秉國) 국무위원(부총리급)과 양제츠(楊潔篪) 외교부장(장관),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부 초청으로 20일 방한한 허융(何勇) 중국공산당 중앙 서기처 서기도 포함돼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는 청융화(程永華) 주한 중국대사가 참석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김 전 대통령의 국제적 위상이 높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 등 김 전 대통령과 친밀하게 지냈던 정치인이 많아 비중 있는 인사가 조문단에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중의원 의장을 특사로 파견한다. 고노 전 의장은 1970∼80년대 김 전 대통령의 구명운동을 벌인 인연이 있다.

◆마지막 일기 공개=유가족은 김 전 대통령이 6월 4일까지 썼던 일기를 정리, 21일 전국 분향소에서 배포하기로 했다. 제목은 본문 문구를 따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다.

임장혁·백일현·김진경 기자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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