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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 전환-격식 파괴’ 김준규 검찰총장 취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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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준규 신임 검찰총장의 취임식이 20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렸다. 김 총장이 취임사를 마친 뒤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연합뉴스]

1993년 대검찰청의 한 검찰연구관실에 연구 과제가 주어졌다.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21세기의 미래상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였다. 당시 작성된 보고서는 깐깐하기로 소문난 송종의 대검차장이 직접 챙겼다. 여간해서는 칭찬을 안 하는 송 당시 차장도 후한 점수를 줬다. 국민의 신뢰와 검찰의 활동을 각각 X축과 Y축으로 한 수학적 좌표 위에 정리한 발상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그 아이디어맨은 16년 전의 김준규(55) 검찰총장이다.

김 총장은 20일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공식 취임했다. 2년의 임기를 시작한 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높다. 기존 검찰총장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기 전에는 미술을 전공하려 했었고, 진로를 바꾸는 바람에 재수를 한 이력도 독특하다. 이 때문에 신임 검찰총장에 대한 검찰 내외의 시각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그의 스타일이 검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와, 경직된 검찰 조직과 불협화음이 생길 것이라는 걱정이 교차하는 것이다.

◆‘격식 타파’=지난달 내정 직후 기자들과의 첫 간담회에서 김 총장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줬다. 미스코리아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것이 ‘미스코리아들과 어울렸다’는 의혹으로 번지는 것에 대한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미스코리아 얘기만 나오면 열받는다. 그때 혈압을 재면 155야.” 장황한 변명은 없었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도 그의 강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부장검사 시절 한동안 사무실에 소파를 두지 않았다. “소파는 차 마시고 접견하는 일본식 문화에서 나온 것으로 일을 하는 사무실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검찰 간부들과의 회의 스타일과 방식도 대폭 바꿀 생각이라고 한다.

김 총장은 이날 취임사에서도 “불필요한 일을 과감히 버리고 검찰 본연의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일하던 2005년엔 검사의 해외 출장 때 멀티태스킹을 주문했다. 법무과가 맡고 있는 재외 한국대사관에 대한 감사업무를 현지에 출장을 가는 다른 검사에게 맡겨 비용을 줄이자는 아이디어였다. 그의 아이디어의 근저에는 ‘어린이 같은 호기심’이 있다. 문제의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을 시작해서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 총장은 ‘넛지’(nudge: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이르는 표현)를 아는 사람이다. 현명하게 조직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일선 수사 경험이 비교적 짧다는 점은 김 총장의 약점이다. 그가 강조했듯이 검찰 본연의 임무인 수사에서 총장으로서의 지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튀는 스타일 때문에 조직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검사다운 검사 돼야=김 총장이 검사들에게 던진 취임 일성은 ‘변모(變貌)’다. 그는 “새롭게 바뀌고 수준 높게 바뀌어야 한다. 검사는 검사답게, 검찰은 검찰답게 일하자”고 말했다. 정치 검찰, 표적 수사 등의 표현으로 일그러진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검사 스스로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 총장은 “하드웨어를 아무리 바꿔봤자, 소프트웨어가 변하지 않으면 과거와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총장은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범죄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라며 “ 범죄에 엄정하고 강력하게 대응하여 법질서를 확립하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서민의 생계형 범죄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승현·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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