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마사다와 중동평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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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유대인들은 줄기차게 독립투쟁을 계속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AD 66~74년의 유대독립전쟁이다.

이때 주동세력이었던 것이 젤로트당이다.

유일신 (唯一神) 여호와를 극단적으로 섬기는 젤로트당은 이교도 (異敎徒) 인 로마의 지배를 거부했다.

로마는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AD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성전 (聖殿) 을 파괴하자 젤로트당은 사해 (死海) 부근 마사다로 피했다.

마사다는 헤롯왕의 이궁 (離宮) 으로 사방이 절벽과 급경사로 이뤄진 산상 (山上) 요새다.

헤롯왕이 죽은 뒤 로마군이 주둔하고 있던 것을 젤로트당이 기습 점거한 것이다.

마사다의 젤로트당은 1천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은 1만5천명 로마군에 맞서 2년 동안이나 버텼다.

마침내 최후가 다가오자 지도자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는 항복보다 자살을 택하도록 부하들을 설득했다.

로마군이 마사다에 올랐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어린이와 부녀자 7명뿐이었다.

당시 로마군을 종군한 유대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이들에게서 들은 마사다의 최후를 '유대전쟁사' 에 기록했다.

'앗사바 (저주받은 곳)' 였던 마사다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 실시된 것은 1963~65년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이를 지원했다.

그후 마사다는 이스라엘 건국이념인 시오니즘의 발원지이자 성지 (聖地)가 됐다.

학생들은 마사다 견학이 의무며, 이스라엘군 병사는 누구나 마사다에서 "마사다는 영원히 함락되지 않는다" 는 선서를 해야 한다.

이스라엘역사학자들은 최근 들어 마사다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은 요세푸스의 기록이 과장된 것이며, 마사다의 진실은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강요된 죽음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생명에 대한 경외 (敬畏) 와 사랑을 내용으로 하는 유대교 정신은 죽음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마사다를 참배하는 이스라엘인 숫자가 크게 줄고 있다.

17일자 신문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총리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에게 마사다를 안내하는 사진과 함께 이스라엘군의 요르단강 서안 철수 거부로 중동평화가 또 다시 위기를 맞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지금 이스라엘에 필요한 것은 결사항전 (決死抗戰) 의 마사다정신이 아니라 이웃과 공존공영 (共存共榮) 하는 평화의 정신임을 네타냐후 총리는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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