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잡이]세일즈맨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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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입 논술시험이 1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수험생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 대비중이겠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면 고전에서 논제가 출제된다고 해서 고전의 내용을 묻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고전이든 제시문을 읽고 분석.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하며 이같은 능력은 비단 고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짧은 기간이더라도 어렵고 다양한 글을 분석적으로 읽으면서 스스로 논제를 설정해 써보는 훈련이 효과적이다.

출제교수들은 수험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제시문을 찾는다.

그래서 가능하면 문학적인 고전에서 제시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문학적 제시문은 읽기는 쉬워도 쟁점 자체가 명료하지 않아 오히려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반면 '동물농장' 에서 출제한 서울대의 경우 정확한 쟁점이나 주장을 요구하는 대신 현대산업사회에 대한 포괄적 견해를 묻는 논제가 출제되는 경향이 있다.

이같은 논제는 쟁점이 명확히 주어져 자신의 주장을 선택하는데 용이한 연세대나 고려대의 논제에 비해 어떻게 보면 더 어려울 수 있다.

제시문 자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오히려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 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도 현대 산업사회 가치관의 혼란에 대한 포괄적 견해를 묻는 문학적 제시문으로 출제될 가능성이 큰 고전이다.

고도화된 산업사회에서 물질적 성장에 따르지 못하는 정신적 가치의 '지체' 를 다룬다.

세일즈맨의 불행한 정신편력과 죽음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조차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비극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윌리는 물질적 성공에 인생의 가치를 두지만 대량 생산체제 아래서 방문판매원으로서는 설 자리가 없다.

결국 당초의 기대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난관에 빠진 주인공은 죽음을 통해 가족을 위한 마지막 헌신을 기도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현대 고도 산업사회에 대한 객관적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대인의 비극적 종말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압권은 가족에게 보험금을 남기려 일부러 자동차 사고를 내고 숨진 주인공 윌리의 장례식 장면. 초라한 윌리의 죽음을 둘러싼 어수선한 말다툼, 부인 린다의 애절한 절규는 현대 산업사회의 비정함과 인간소외, 중산층의 힘겨운 삶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 미국 공황의 체험을 토대로 쓰인 이 고전은 고도성장 시기에 물질적 성장에만 모든 가치를 부여했던 우리의 샐러리맨들이 해고의 위협 앞에 새로운 가치를 찾지 못해 정신적 공황을 맞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바로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물질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 사이의 선택을 묻는 논제를 출제할 수 있으며 현대사회의 인간소외와 중산층의 불안에 대한 포괄적 문명비판을 요구하는 논제를 출제할 수도 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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