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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는 건강한가] 지리산 실상사서 열린 자기 성찰 자리 ‘야단법석’에 가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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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7일 실상사에서 운영하는 대안 학교에서 ‘정법불교를 모색하는 지리산 야단법석’이 열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은 도법 스님이 법문을 마친 혜국 스님右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암울한 우리시대 불교 현실=조계종단의 소의경전(근본경전)은 『금강경』이다. 첫 법문을 맡은 무비(전 범어사 승가대학장) 스님은 “이 시대의 불교는 참으로 암울하다. 『금강경』의 눈으로 우리를 짚어보자”며 “붓다는 ‘나의 설법은 뗏목과 같다. 강을 건넌 뒤에는 뗏목을 버리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방편불교를 과연 방편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많은 무당화한 방편불교와 거품불교는 과연 뭔가. 또 사람들은 진정으로 여래를 신체적 특징과 형상을 떠나서 이해하고 있는가”라며 현시대의 비불교적 요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17일 오전, 강단에 오른 향봉(전북 익산 사자암) 스님은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부처님 오신 날이나 안거 때면 법어(法語)가 나온다. 법어는 산중의 최고 어른인 방장이나 조실 스님이 직접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법어가 실은 ‘짜깁기 짝퉁’이 많다. 조실 스님이 직접 쓴 게 아니라, 시중 드는 시자가 선어록에서 뽑아 대신 짜깁기한다는 얘기다.”

좌중에서 물음이 쏟아졌다. “왜 그렇게 하는 겁니까?” 향봉 스님은 방장이나 조실 선출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꼬집었다. “10년 전, 20년 전만 해도 없었던 일이다. 해인사만 해도 예전에는 방장이나 조실을 추대할 때 다수 의견이 존중됐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힘이 있는 문중에서 방장과 조실이 나온다. 깨달음의 안목과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게 본인이 캄캄하니 법거량(法擧量·스승에게 깨우침을 점검 받는 것)도 할 수 없고, 법어도 직접 쓸 수가 없는 거다. 참 슬픈 일이다.”

◆돈과 권력 좇는 종교 개혁 필요=야단법석을 듣던 재가자들은 “속이 시원하다” “스님들의 솔직한 지적과 고백이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수행의 방향을 모색하는 값진 자리다” “스님들은 수행에 정진하고 사찰운영은 재가자가 맡는 게 어떤가” 등 다양한 소감을 피력했다.

오후에 강단에 오른 혜국(전국선원수좌회대표) 스님은 “저는 간화선을 부정하면 부처님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청중석에 앉은 도법(인드라망공동체 상임대표) 스님이 손을 든 뒤 질문을 했다. “저는 승가교육과 사부대중에 대한 혁명적인 조치가 없이는 조계종단의 미래가 없다고 본다. 10월이면 총무원장 선거가 열린다. 어떤 종정, 어떤 총무원장, 어떤 종회의원, 어떤 본사주지가 나와도 승가교육을 절체절명의 과제로 삼길 바란다. 이를 위해 선방 수좌들이 목소리를 내줄 수는 없나?”

혜국 스님은 “신도들도, 강원의 학승도 그 일을 하기는 어렵다. 맞다. 그건 수좌의 몫이다. 그걸 위한 방법을 찾으면 저도 동참하겠다”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도법 스님은 ‘종교의 권력화’를 도마 위에 올렸다. 그는 한국의 종교가 집단세력화, 이익집단화했다고 지적했다. “돈과 권력을 좇는 건 세속의 일이다. 이를 위해 세력을 구축하고,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편을 가르고 싸움을 벌인다. 한국의 종교도 마찬가지다. 불교도 이런 의문 앞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무비·도법·향봉 스님 등은 ‘움직이는 선원’을 꾸려서 지리산 일대 사찰을 중심으로 수행적 대안을 모색한다. 올 겨울 안거 때는 ‘지리산 걷기 수행’을 시도할 참이다. 지리산 야단법석에서 나온 한국불교의 건강검진 결과는 ‘심각함’이었다.

남원(전북)=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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