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오늘은 콩, 내일은 인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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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10월 켄트.쿨 등을 생산하는 미국 담배회사가 니코틴의 체내 흡수도를 높여 중독성을 두배 이상 증가시킨 담배를 개발, 시판해온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

일명 슈퍼니코틴 담배라 불린 마약에 가까운 이 담배는 그동안 인류의 식량문제 해결과 질병퇴치를 이룩할 획기적인 기술로 여겨왔던 유전공학이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지난 4일 유전자를 조작해 생산한 미국산 콩을 실은 배가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유전자 조작이란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여러 생물의 유전자를 재조합해 자연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특정한 성질을 지닌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에 수입된 콩은 '라운드업' 이라는 맹독성 제초제에 저항성을 갖도록 유전자 조작된 것이다.

이 콩은 그동안 인간이 식품으로 섭취하지 않았던 바이러스와 세균의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어 우리가 먹었을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또한 국제적으로 그 안전성이 증명되지 않아 많은 논란을 빚고 있다.

만약 이 콩의 유전자가 일반 잡초에 전달된다면 슈퍼잡초의 등장이라는 걷잡을 수 없는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유럽의 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 등의 나라에서는 유전자 조작된 농산물의 수입이나 재배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유럽 나라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표시 의무화를 시행하는 등 국가적인 문제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관계당국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수입 실태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의 안전을 위한 신뢰할 만한 어떠한 조치나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관계당국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과 안전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작업에 하루빨리 착수해야 한다.

더 이상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유전자 조작된 농산물이 아무런 규제없이 수입.유통되도록 관망만 하고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들 또한 일부 과학자들에 의해 과대포장된 유전공학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버리고 유전공학이 몰고올 수 있는 인류파멸의 위험성에도 경각심을 지녀야 할 것이다.

환경.소비자단체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유전자 조작의 위험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관계당국에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행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나아가 외국의 환경단체와 연대를 통해 유전자 조작으로 막대한 이윤을 챙기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감시활동도 늦추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진 가장 큰 빚은 친구에게 진 빚도, 다른 나라에 진 외채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자연에 진 빚이다.

인간이 자연을 겸허한 자세로 대하지 않고 인위적인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면 자연은 인간에게 커다란 재앙만을 안겨주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최열(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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