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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제6장 두 행상

그로부터 사흘 뒤 장전날 상주로 되돌아온 변씨와 같이 도착한 것은 간고등어 20상자와 오징어였다.

간고등어는 덜마른 오징어를 구워내던 화덕을 망쳐버린 승희의 몫이었다.

장차 상당한 기간 동안 상주와 같은 내륙지방의 장마당을 누빌 작정이라면, 간고등어 장사로 이문을 겨냥해 볼 만했기 때문이었다.

변씨가 주문진을 내왕할 동안 태호와 승희는 간고등어 매상을 위한 전단을 마련하였다.

전단은 세가지 생선에 대한 국내산과 수입산의 구분법을 일목요연하게 적은 것이었다.

우선 국내산 고등어는 몸통이 방추형이고 몸통을 잘랐을 때 타원형을 이룬다.

그리고 등쪽은 녹색으로 검정색의 물결무늬가 옆줄까지 그어지고, 배쪽은 반점이 없는 게 특징이었다.

그러나 미국이나 노르웨이.뉴질랜드 등지에서 수입된 고등어는 몸통의 모양은 국내산과 비슷하지만, 등쪽의 색깔이 진한 푸른색으로 굵은 물결무늬가 있다.

또한 아가미 부분에 하얀 반점이 뚜렷했다.

국내산 대구의 두드러진 특징은 주둥이 부분이 둔하고 큰데 턱을 잘 보면, 매의 수염같은 것이 붙어 있고, 입은 비스듬히 찢어져 있다.

등지느러미가 있는 옆구리 부분엔 모양이 고르지 않은 많은 반점과 물결무늬에 비늘은 작고 둥글었다.

그러나 미국.일본.러시아에서 수입되는 대구는 몸이 가늘고 길며 주둥이 부분이 납작하였다.

입은 크고, 턱에는 단 한개의 수염이 있었다.

가슴지느러미 아랫부분에 눈에 띄는 한 개의 검은 반점이 있고, 몸의 윗부분은 갈색이고, 아랫부분은 백색이며 온몸이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 다음은 일반 소비자들이 가장 속기 쉬운 조기의 판별법이었다.

넙치와 가자미, 홍어와 가오리를 구분하기 어렵듯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조기와 부세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우선 참조기는 몸통이 다소 두툼하고 길이가 짧은 편이었다.

머리부분과 몸 사이에 움푹 파인 다이아몬드형 굴곡이 있고, 몸통 옆에 굵은 옆줄이 선명하고 뚜렷했다.

주둥이 부분은 붉고 복부는 누런 황금색을 띠고 꼬리 부분은 길고 두껍다.

그러나 부세는 참조기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몸통이 가늘고 긴 편이고 다이아몬드 표시가 없었다.

머리가 몸 전체에 비해 큰 편이고, 비늘도 몸통에 비해 컸다.

꼬리 부분도 길이가 길고 가늘었다.

특히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수입된 조기는 몸 전체가 회색이거나 흰색이고, 옆줄이 선명하지 못하고 눈이나 복부나 지느러미가 붉은 색을 띠었지만 몸에 광택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국내산 조기로 알고 선뜻 사가기가 쉬웠다.

부세의 모양새 역시 엄밀하게 따지면 국내산과 수입산이 서로 다르지만, 어획지역이 똑같은 서해안이기 때문에 국내산과 수입산의 구별이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국내산이나 수입산을 따지기보다는 가격 먼저 따지는 편이었다.

경북 내륙지방의 장터에서 팔리고 있는 고등어는 상품 한손 (두마리)에 3천원이고, 두손을 들여갈 경우는 5천원이었지만, 대개의 소비자들은 가격에 속지 않는다 싶으면 국내산과 수입산을 구태여 따지려 하지 않고 사들여갔다.

더욱이나 소비자가 일단 손가락질만 하면, 상인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생선의 머리통과 꼬리부분을 싹둑싹둑 도마질해서 몸통 부분만 비닐봉지에 넣어 건네주기 때문에 눈썰미를 자랑할 겨를조차 없었다.

다소 따지기를 작정한 주부가 있다 한들 이미 흥정이 되어 순식간에 몸통까지 토막낸 생선 3천원어치를 두고 내 바다 것이니, 네 바다이니 따진다는 것이 배리고 속절없는 아귀다툼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그러나 한씨네가 전단을 돌리기 시작했던 상주장날의 분위기는 달랐다.

장이 서는 남성동 풍물거리에서 생선을 소매하고 있는 난전꾼들의 수효만도 20여명이나 되었고, 뒤쪽에 있는 상설시장에서 점포를 가진 어물상인들도 얼추 따져 삼십여 점포를 헤아렸다.

아침 나절에 뿌려진 전단만도 백여장이었다.

전단을 얻어쥔 장꾼들이 난전을 찾아와 지금껏 따지지 않았던 것을 따지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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