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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세근의 홍콩에세이]패가망신한 홍콩의 '왕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북상 (北上) 한 왕뱀 (蛇王) 들, 군오징어 (炒) 신세' . 요즘 홍콩 일간지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제목이다.

언뜻 보면 요령부득의 선문답 같지만 실은 홍콩의 매매춘 (賣買春) 풍조를 질타한 내용이다.

여기서 왕뱀이란 표객 (표客) , 즉 돈주고 여자를 사는 남자를 가리킨다.

북상은 홍콩에서 중국 선전 (深수) 시로 올라간다는 얘기이고, 군오징어란 공안 (公安)에게 붙잡힌 난봉꾼을 빗댄 말이다.

우리 식으로 풀어쓰면 '바람 피우러 선전에 갔다 쇠고랑' 쯤 되는 말이다.

홍콩 물가가 비싼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홍콩에서 바람 피우려면 여간 큰 돈이 드는 게 아니다.

선전은 홍콩과 이웃한, 서울로 치면 의정부시쯤에 해당하는 곳이다.

물가는 홍콩의 3분의1, 유흥비는 최대 10분의1 수준이다.

지금까지 선전은 이들에게 완벽한 '안전지대' 였다.

공안이 매매춘을 묵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주룽지 (朱鎔基) 총리의 지난달 남순 (南巡.남쪽지방 순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朱총리가 매춘.밀수.부정부패를 '3대 악풍' 으로 규정하면서 철저한 단속을 지시한 것이다.

곧 대대적인 사오황 (掃黃.매춘단속) 이 진행됐다.

선전시내 유명한 매춘거리인 황파이링춘 (黃貝領村) 부근에는 '다섯걸음마다 파출소, 열걸음마다 경찰서 (五步一崗 十步一站)' 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단속이 삼엄해졌다.

그 결과 홍콩인들이 말린 오징어처럼 줄줄이 엮어져 나왔다.

한번 걸리면 곧바로 패가에 망신이다.

최대 10만위안 (약 1천6백만원) 정도의 벌금은 오히려 둘째다.

'몸값' 치르러 온 아내를 보는 일이 더 난처하기 때문이다.

진세근 홍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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