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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이신바예바 … ‘과학 그 이상의 무엇’으로 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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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육상은 첨단 과학의 결집체다. 과학이 만들어낸 운동화와 유니폼, 장비에다 온갖 이론이 가미된 과학적 훈련법 없이는 0.01초를 단축하기도, 1㎝의 벽을 뛰어넘기도 어렵다.

최근 로마에서 끝난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첨단 수영복’이 세계신기록을 양산했다는 말을 듣듯이 현대 스포츠는 과학의 힘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남자 100m·200m 세계신기록을 보유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와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절대강자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는 비과학적인 습관이나 장비 선택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다. 남자 트랙 200, 400m를 주름잡았던 마이클 존슨(미국)은 독특한 숏피치 주법으로 1990년대 세계무대를 평정했다. 과학은 스포츠를 강하게 하지만 ‘과학 그 이상의 것’이 있기에 스포츠는 더욱 흥미롭다.

여유만만 우사인 볼트. 16일(한국시간) 열린 남자 100m 준준결승에서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中가 좌우 레인의 경쟁자들을 둘러보는 여유를 보이며 느긋하게 레이스 하고 있다. 볼트는 10초03, 5조 2위로 준결승에 올라갔다. [신화=연합뉴스]

◆볼트 ‘너깃 먹고 헐렁한 유니폼’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남자 100m에서 세계신기록(9초69)을 세운 볼트는 우승 비결을 묻는 질문에 “치킨 너깃을 먹은 덕분”이라고 밝혀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는 “경기 당일 낮에 너깃을 두 번이나 먹었고, 3시간 동안 낮잠을 잔 뒤 레이스에 임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경기 당일 육류를 먹는 것은 금기다. 소화 부담으로 인해 컨디션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론에 따르면 경기 당일 순간 폭발력을 늘리려면 탄수화물을 먹는 게 좋다고 한다. 대부분 단거리 선수들은 경기 시작 두 시간 이전에 흡수가 빠른 단당류 탄수화물(바나나·포도주스 등)을 섭취한다. 볼트의 비과학적인 버릇은 이뿐이 아니다. 거의 모든 스프린터가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해 몸에 달라붙는 첨단 소재의 유니폼을 입지만 볼트는 헐렁한 트렁크 운동복을 고집한다. 꽉 끼는 유니폼이 답답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신바예바 ‘위력적인 4m 폴’

이신바예바는 4m 장대를 사용한다. 정상급 선수들이 5m 장대를 쓰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짧다. 한국신기록(4m35㎝) 보유자 임은지(부산 연제구청)도 4m45㎝ 장대를 사용하고 있다.

폴이 길수록 탄성에너지를 최고조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5m 장대를 사용하면 더 좋은 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주위의 조언에도 이신바예바가 4m를 고집하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자신만의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서란다. 짧은 장대를 사용함에도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비결은 장대를 잡는 그립 방식에 있다. 다른 선수들은 장대 끝에서 15㎝ 정도 여유를 두고 잡지만 이신바예바는 맨 끝을 잡는다. 그만큼 도약할 때 힘을 많이 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존슨, ‘주법 이론 새로 쓴 숏피치’

10년째 남자 400m 세계신기록(43초18)을 보유하고 있는 마이클 존슨은 고교 시절 200m를 21초에 뛰던 평범한 육상선수였다. 그는 짧은 다리와 긴 상체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뛰는 ‘스타카토 주법’을 고안해 냈다.

당시만 해도 400m 주법은 곡선주로에서 보폭을 짧게 뛰다 직선주로에선 보폭을 넓히는 혼합형 주법이 사용돼 왔다. 존슨의 상식을 파괴한 주법은 과학으로 증명된 이론을 바꿨다. 요즘 400m 선수 중에는 숏피치 주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케베데 ‘5000m·1만m는 필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와 폴 터갓(케냐), 폴라 래드클리프(영국)처럼 세계적인 마라토너가 되려면 필수 코스가 있었다. 5000m와 1만m 등 장거리를 거쳐 마라톤에 입문하는 게 상식이다.

스피드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동메달을 따낸 체가예 케베데(에티오피아)는 이 절차를 생략했다. 카펫을 만들고, 목동 일을 하며 돈을 벌던 그는 우연히 참가한 하프마라톤에서 두각을 보인 이후 2년 만에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성장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그는 최고 기록을 2시간5분20초까지 끌어올렸다. 불과 21살의 그는 향후 마라톤 세계신기록을 깰 유망주 1순위로 꼽힌다. 마라톤 전문가들은 그의 놀라운 성적에 대해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며 스피드 훈련을 했고, 더 중요한 것은 천부적인 자질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케베데 자신도 “훈련만으로 이렇게 실력이 향상될 수는 없다. 나도 내가 놀랍다”고 말했다.

베를린=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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