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커버'의 배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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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 02면

공연에서 ‘커버’란 게 있습니다. 주연 배우가 원 캐스팅(한 명)인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주연 역할을 준비하는 사람이죠. 두 명의 주연 배우가 교대로 무대에 오르는 ‘더블 캐스팅’과는 다릅니다. ‘만일의 사태’가 없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도 사실 없습니다.

뮤지컬 ‘샤우팅’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1일, 바로 그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주연을 맡은 아이돌 그룹 빅뱅의 멤버인 대성이 큰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죠. 대성의 병세와 함께 그의 출연 여부, 공연 개막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제작사 측은 대성을 대신해 커버 배우인 강인영(30)씨를 세운다고 12일 오전 밝혔습니다.
그리고 12일 저녁. 강씨는 대성이 빠진 것을 못내 섭섭해 하는 관객들에게 대성의 역할을 깔끔하게 소화해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대성보다 10살이나 많은 그는 대성의 이미지를 살려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관계기사 4면>

연습생이 스타가 되는 과정을 그린 이 뮤지컬은 사실 빅뱅의 대성과 승리를 위한 작품입니다. 극중 연습생의 이름도 대성과 승리죠. 공연 일수도 길지 않은 만큼 ‘커버’가 무대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대성의 커버로서, 혼자 묵묵히 대성의 대사와 몸동작과 노래를 연습했을 강씨를 떠올려봅니다. 아마 “내가 대성이다” “내가 주연이다”고 수없이 자신에게 되뇌었겠죠. 만일 그가 준비를 제대로 해놓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제작사 측은 “배우들은 맡은 배역에 충실하게 임한다. 관객과의 약속인 무대를 지키기 위해서다”라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나는 지금 내 배역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나 하고요.
p.s. 대성군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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