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다양한 경험 쌓기로 방학 마무리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요즘 필자 연구실에서 고교 2학년 학생 한 명이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논문을 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해 외국 대학 입학허가서를 받을 때 유리한 점수를 받으려는 목적도 있는 듯하다. 연구를 위해 그는 하루에 많게는 8개의 반응기를 돌려 결과물을 얻고 있다. 고등학생이 입시 준비를 하지 않고 방학 동안 어떻게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을까. 그가 다니는 학교(특목고)가 학생의 창의력 향상이나 개성에 맞는 미래 설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방학기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허락해 준 결과다.

최근 대학이나 과학고 학생 선발에 지식을 점검하는 성적보다는 입학사정관제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 제도는 학벌 중심 사회와 학력 중심의 입시제도에서 탈피하는 방법인 동시에 면접을 통해 젊은이들의 개성과 잠재력을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학교 현장은 아직도 타성에 젖은 구태의연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중·고교 현장엔 요즘 방학이 없다. 대부분의 학교가 보충수업을 이유로 학생을 붙잡아 둔다. 방학 동안 80~120시간의 보충수업을 하기 일쑤다. 학기 중에도 대부분 학교는 정규수업 말고도 방과후 학교 수업과 수준별 학생 지도 등으로 연속적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학업을 지도하는 교사와 지도를 받는 학생 모두 수업의 울타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방학 동안 교사들이 교과교육 연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 학생들 또한 무언가 그들 스스로 수행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학생 선발 제도가 정착하려면 그에 걸맞은 교육행정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학교교육 시스템이 학생에게 방학 동안만은 미래 진로를 계획할 수 있는 자유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학생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부족한 분야를 보충하거나 관심 있는 분야에 몰두하고, 여러 방면에 걸쳐 경험을 쌓을 것이다. 언어나 예술, 수학이나 과학을 더 심층적으로 해볼 수 있고 대학의 서머스쿨에 참여할 수 있다. 학교에서 과학선생님이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 특정 주제에 대해 연구할 수도 있다. 기업 현장에서 일하거나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고, 세계여행을 할 수도 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바람직한 인성을 기르게 될 것이다. 학생들을 훌륭한 인성을 지닌 인재로 육성시키기 위해 우리 사회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특히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그들을 믿고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최순자 인하대 교수·화학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