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신념을 가진 다혈질 루터와는 딴판이던 에라스무스는 ‘맨손으로 물과 불을 섞는’ 고난도의 작업에 도전했다. 종교개혁 이후 끔찍한 증오의 폭풍 속에서 펼쳐진 위대한 노력이었는데, 그런 견제가 없었더라면 루터의 신념은 광기로 치달았다는 게 츠바이크의 지적이다. 칼뱅 역시 신정(神政)정치를 실현했던 강철권력이었다. 그러나 그의 라이벌 카스텔리오는 달랐다. “누구도 신념을 강요할 수 없다”며 전체주의 폭력이 갖는 위험성을 견제했다.
때문에 지금 유럽의 종교적 평화는 순전히 그들 덕인데, 향적 스님의 신간 『프랑스 수도원의 고행』의 갈피에서 그 구체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다. 책은 꼭 20년 전 한국 조계종의 향적 스님이 프랑스 가톨릭의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1년 간 수도하는 과정을 담았는데, 가히 놀라웠다. 수도원 내의 한 인쇄소에 갔더니 그곳 책임자 신부의 방에는 관음보살상 사진이 붙어 있었다. 당시 한국의 풍토로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었다. 그곳 신부·수사들은 매주 월요일 스터디그룹에서 『법화경』 등을 열심히 공부했다.
“관음과 성모 마리아는 자비와 사랑의 화신인데, 불교에서는 관음으로 나타나고,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로 화현했다고 그들은 말했다. 수도원에 머물기 전 나는 가톨릭은 유일신교라서 타 종교에 배타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게 깨졌다.”(51쪽 요약) 저자의 말대로 불교 수행자를 받아준 것 자체가 관용의 미덕에서 가능했다는 게 중요하다. 종교개혁 시기 에라스무스·카스텔리오가 뿌렸던 위대한 씨앗이 꽃 피웠다는 게 내 생각인데, 관용의 미덕은 ‘다종교의 나라’ 한국 땅에도 이미 뿌리를 내렸다.
상대 종교의 경축일에 메시지를 보내는 게 그렇고,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는 조각가 최종태의 ‘성모 마리아 닮은 관음보살상’도 그걸 상징한다. 왼손에는 감로수 정병을 쥔 완벽한 관음이지만, 분위기는 영락없는 성모상이라서 절묘하다. 지난 20년 우리도 많이 변한 것이다. 그러면 신간 『프랑스 수도원의 고행』은 조금 늦게 나온 책일까? 아니다. 자칫 깨지기 쉬워 언제라도 새롭게 음미할 게 관용의 가치이니까. 실은 이 책은 종교나 관용의 가치를 넘어 누가 읽어도 마음 따뜻한 구도의 기록으로 읽힐 것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