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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보'에 빠진 일본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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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일본에서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세계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일본 여성들이 순애보에 푹 빠졌다. 눈물을 짜내는 순정물들이 소설.영화.드라마 등 각종 문화상품의 인기 차트 상단을 휩쓸고 있다.

일본에서 뜨거운 인기를 모았던 '겨울연가'가 몰고온 후폭풍인 셈이다. 연인과의 사별(死別), 이루지 못한 첫사랑 등 진부한 주제지만 일본 여성들은 세대를 초월해 '대책없이' 빠져든다.

일본 문화계는 이를 1970년대 '러브 스토리' 이후 최대의 순애 붐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고생은 '세카추', 중년층은 '겨울연가'=가타야마 교이치(片山恭一)의 소설 '세계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지난 주말까지 모두 321만권이 팔려나가 소설부문 역대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국내에서 '상실의 시대'란 제목으로 번역됐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80년대 소설 '노르웨이의 숲'의 판매기록 239만권을 훌쩍 뛰어 넘은 것이다.

이 소설은 만화로도 제작돼 100만부가 더 팔렸다. 장기 불황에 빠졌던 출판계는 '세계의 중심…' 덕택에 올 상반기엔 7년 만에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동명 영화는 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다시 드라마로 제작돼 지난달부터 주1회 방영에 들어갔다. 지난주 시청률은 16.9%로, 드라마 부문 2위다.

줄거리는 고교생인 사쿠타로가 백혈병으로 숨진 여자친구 아키가 열망했던 호주 여행을 떠나면서 아키와의 첫사랑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특별히 신선하지도 않고, 문장도 평이한 수준이지만 여중.여고생들로부터는 폭발적인 인기다.

언론에서는 '세카추 현상'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 세카추는 소설제목의 일본어 '세카이노 추신…'을 줄인 말이다. 세카추 세대와 달리 30대 중반 이상의 중년층은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에 열광하고 있다.

'겨울연가'의 영향으로 매달 10여편 이상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의 절반 이상은 순애물들이다. 젊은이들의 첨단 유행을 바탕에 깔고 전개되는 트렌디 드라마나 불륜.범죄 등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뚜렷한 퇴조 징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진주부인''진실일로' 등 낮에 방영되는 순애 드라마가 낮방송으로는 이례적으로 8% 이상의 시청률을 보였다.

◇살벌한 세태에 대한 반작용=지난해부터 순애물 붐이 일고 있는 이유에 대해 문화 평론가들은 "국제적으론 테러와 이라크 전쟁, 국내적으론 장기 불황과 소년범죄의 빈발 등 살벌하고 우울한 뉴스가 넘치는 세태에 대한 반작용"이라며 "사람들은 순애물에서 대리만족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쓰(電通)의 소비자연구센터는 순회설을 주장한다. 순애붐이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반복된다는 분석이다.

시즈오카(靜岡)대학 우마이 마사유키(馬居政幸)교수는 "과거 순정만화에 길들여진 중년 여성들이 최근 '겨울연가'에서 옛날과 비슷한 감정과 스토리 전개를 발견하고 몰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도쿄=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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