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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단에 이는 긴장감 … 객석은 가득 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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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태지(右) 단장은 “출연료 차등 지급은 국립발레단 역량 강화의 출발점”이라며 “치열한 경쟁은 단원들의 수준을 끌어 올리면서 공연의 질도 높여 마침내 발레 관객까지 늘릴 수 있는 선순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직접 단원들을 지도하고 있는 최단장의 모습. [국립발레단 제공]


그의 도전은 혁신의 바람을 몰고 올 것인가.

최태지(50) 국립발레단장이 작지만 의미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초 단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공연 수당’이라 불리는 단원들의 회당 출연료를 차등 지급하기 시작한 것. 주역일 경우 15만원부터 40만원까지 받으며 조연 등 솔리스트는 13만∼25만원, 군무를 연기할 땐 5만∼15만원을 받게끔 했다. 이전까진 주인공을 하든, 단역으로 잠깐 나오든 무조건 1회 공연 수당은 5만원이었다.

◆국립 예술단체의 획일성=왜 출연료 차등 지급을 택했을까. 이에 대해 최단장은 “어떻게 달랑 1분만 나온 엑스트라와 2시간 내내 무대에서 고생한 주인공을 같이 대우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프로페셔널한 직업이라면 성과와 중요도에 따라 달리 대우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봤자 얼마나 차이 난다고?’ 할지 모르겠다. 사실 공연 수당 몇 푼 더 받기 위해 주역을 따내려는 건 아니다. 그건 분명 명예요, 예술적 자존심이다. 그러나 돈이라는 현실 역시 간과할 순 없다. 게다가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국립발레단원들의 처우는 열악하다. 60명인 정단원의 연봉은 2000만∼4500만원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최고 발레리나 김주원(32)씨의 1년 연봉 역시 4500만원이다. 수당으로 몇 십만원을 더 받게 되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는 “지난 1년간 꾸준히 주역을 한 단원의 경우 그 이전보다 약 1000만원 가량 더 벌어 들였다”고 전했다.

문화부에 속한 국립 예술단체는 모두 12개다. 이중 배역의 비중에 따라 공연 수당을 달리 주는 단체는 국립발레단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단체별로 액수가 조금씩 다르지만, 동일 단체라면 배역과 상관 없이 공연 수당은 똑같다. 이는 서울시극단·서울시무용단 등 세종문화회관 산하 9개 시립 예술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단체는 대부분 예술노조가 강성을 띤 것으로 알려져왔다. 한 노조 관계자는 “그래도 똑같이 무대에 서는 데 누군 많이 받고, 누군 적게 받으면 위화감이 생긴다. 단체의 결속력도 약화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획일적 대우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단장은 “‘백조의 호수’ 같은 작품에선 어떤 군무는 딱 한번만 나오지만, 또 다른 군무는 5번이나 의상을 갈아 입고 나와야 한다. 과거엔 똑같이 대우를 한 탓에 아무도 힘든 역을 맡으려 하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국·공립 예술단원들 사이에선 “무대에 안 서는 게 오히려 돈버는 거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애써서 공연해 하루에 5만원 버느니, 그 시간에 수험생들 실기 레슨을 하는 게 수입면에선 훨씬 낫기 때문이다. 국립극장 관계자는 “국립극장 예술단체 중엔 지난해 한번도 무대에 서지 않은 단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단체의 체질개선=출연료 차등 지급에 대해 국립발레단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최근까지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였던 김지영씨는 “유럽에선 배역에 따라 수당이 다르다. 아무리 예술 분야라도 개인적 기여도에 따라 대우를 달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돌아봤다. 김주원씨는 “건강한 긴장감이 발레단에 일고 있다. 후배들이 언제 치고 올라올지 몰라 나를 더 채찍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예산이다. 최단장은 “출연료로 더 나간 돈은 무대·마케팅 등 다른 데 쓰는 돈을 최대한 절약해 보충하고 있다”며 “지금 당장은 예산 운용에 어려움이 있지만, 단원들간의 치열한 경쟁은 궁극적으론 공연의 질을 높여 관객을 더 끌어 들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 덕분인지 올 3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립발레단의 ‘신데렐라’의 유료 점유율은 90%를 넘겼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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