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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독일은 눈물로 나치 사과하는 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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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독일인들은 나치의 범죄를 생각하면 부끄러움 속에서 몸을 수그립니다." 1일 바르샤바의 볼스키 국립묘지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또다시 분명한 어조로 과거사를 사과했다. 60년 전 나치에 대항했던 바르샤바 무장봉기 때 무고하게 희생된 시민들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그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인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줬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뒤 당시 나치군에 항거했던 폴란드 시민군 노병들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해 폴란드 정부인사들을 놀라게 했다.

1970년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도 바르샤바 시민 학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그 뒤를 이어 로만 헤어초크, 요하네스 라우 등 독일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지난달엔 호르스트 쾰러 신임 대통령까지 폴란드를 방문해 거듭 과거사를 뉘우치고 반성했다. 폴란드의 요구 때문이 아니었다. 매번 자발적인 반성이었다.

독일 정부와 기업들이 함께 설립한 '기억.책임.미래재단'은 2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강제로 동원했던 유대인과 일반 노역자 13만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재원은 2000년에 조성된 6조원가량의 강제노역보상기금에서 마련했다. 나치 정권과 독일 대기업들이 강제노역자들을 각종 공사판과 군수공장에서 노예처럼 부린 데 대한 위로였다.

반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지난 1월 1일 이웃나라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취임 후 네번째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놓여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한국과 중국의 거듭된 중단 요구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는 "앞으로도 매년 계속해서 참배할 것"이라고 거듭 고집을 부리고 있다. 또 일본 정부는 2차 대전 당시 징용과 징병.위안부 등의 명목으로 끌고 간 100여만명의 조선인 희생자들에게 개별적인 피해보상은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65년 한.일 수교협정에서 국가 차원의 배상이 이미 끝났다는 이유에서다.

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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