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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한국 벽 실감한 외국 대표들, 도장 찾아다니며 “최강 바둑 배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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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삼성화재배에 참가한 외국 대표 10명. 왼쪽부터 태국 파리와트, 헝가리 발로그 팔, 미국 고대혁, 체코 온드레이 실트, 네덜란드 머린 쿠인, 독일 핀하버 마르고, 싱가포르 탄지아 쳉, 러시아 라자레프, 루마니아 욘 플로레스쿠, 프랑스 폴 드로우. 실력은 한참 떨어지지만 이들에게도 바둑은 삶 그 자체다. [한국기원 제공]

헝가리의 발로그 팔 6단은 바둑에 관한 한 수도승처럼 진지하고 승부욕이 강해서 누구한테든 자신감이 넘친다. 8세 때 바둑을 시작했고 지금은 대학생. 이번에도 불원천리 찾아와 서울의 프로 세계에 도전했으나 첫 판에 이정우 7단을 만나 패하고 말았다. 러시아의 알렉세이 라자레프 6단은 유럽챔피언을 두 번이나 지낸 대학의 수학 교수. 홀린 듯이 바둑에 빠져 한국도 벌써 7번째 찾아왔고 러시아로만 돌아가면 금방 한국 음식이 그리워진다는 한국 매니어이기도 하다. 조훈현-이창호 사제가 1994년 볼가강에서 도전기를 두는 바람에 두 사람을 가장 좋아하게 된 그는 서양바둑의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최원용 6단에게 진 뒤 “상대가 너무 강했다”고 말했다.

루마니아 챔피언 플로레스쿠 6단은 4년 동안 일본에 바둑유학을 한 강자로 김영삼 8단과의 대국이 바둑 TV에 방영되는 영광을 안았지만 역시 실력 차이는 컸다. 삼성화재배에 초대된 10개국 10명의 외국 대표는 단 한 사람도 첫판을 넘기지 못했다(미국대표로 온 한국인 고대혁 7단이 첫판에 기권승했으나 곧 이상훈 9단에게 패배).

하지만 이들은 바둑TV에 나가 한밤중에 치러지는 KB한국리그의 검토에 참여하기도 하고, 바둑도장과 친선 대국을 갖는 등 최강 한국 바둑을 배우는 데 여념이 없다. 세계대회의 구색 맞추기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한국을 알리고 바둑 세계화를 돕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즈 통합예선이 3~8일 14개국 310명의 기사가 참가한 가운데 한국기원에서 열리고 있다. 프로는 한국 195명, 중국 53명, 일본 27명, 대만 13명. 여기에 치열했던 아마추어 예선 통과자 12명과 유럽 등 10개국에서 초청된 10명이 가세했다.

매년 신선한 기획으로 변신을 거듭해온 삼성화재배는 올해도 대회 방식을 대폭 바꿨다. 가장 큰 변화는 예선전 대국료를 모두 없애고 32강 본선부터 상금을 주는 것. 그리고 문호를 전면 개방해 연구생 등 모든 아마추어가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본선(32강전)을 토너먼트에서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바꾸고 본선 시드는 타이틀 홀더로 제한했다. 우승상금은 2억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올렸고 유럽 등 10개국 대표를 통합 예선에 참가시켰다.

8일 결정되는 15명의 예선 통과자는 시드 17명(주최 측 와일드카드 1명 포함)과 합류해 다음 달 8일 유성연수원에서 본선 32강전을 시작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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