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건설 '종금사 삼키기' 기업사냥 20억 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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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연간매출 4백억원대의 중견 건설업체가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종금사 인수.합병 (M&A) 을 추진하다 무리한 자금조달이 화근이 돼 결국 회사는 부도나고 사주는 검찰에 구속됐다.

이 업체는 브로커를 동원한 전방위 로비는 물론 인수대상 업체의 간부와 노조위원장을 매수하는 등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기업 사냥' 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지검 특수1부 (朴相吉부장검사) 는 이와 관련, 21일 경남모직 계열사인 한효건설 김중명 (金重明.38) 부사장과 M&A 브로커 김성집 (金聖集.43) 씨 등 2명을 증권거래법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전 한국자원재생공사 감사 김영일 (金英一.56).항도종금 관리본부장 손영곤 (孫永坤.46).항도종금 노조위원장 안웅기 (安雄基.32) 씨 등 7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알선수재)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경남마산에 본사를 둔 한효건설이 부산 항도종금에 대한 적대적 M&A에 나서게 된 것은 지난 96년 4월. 브로커 김성집씨가 한효건설의 실질적 사주인 김중명 부사장에게 접근, "항도종금을 인수하면 5백억원을 앉아서 챙길 수 있다" 고 제의했다.

한효는 유령회사 ㈜효진과 경덕종합건설 명의로 약속어음을 발행하고 지급 보증하는 방법으로 4백억여원의 자금을 조달한 뒤 96년 12월 항도종금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에 나섰다.

이와 함께 5억원의 사례금을 주고 증권브로커 정삼룡 (42.구속) 씨를 동원, 차명계좌 25개를 통한 불법 매입도 병행했다.

또 국세청.증감원 등에서 자금출처 조사에 나서자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로비자금 20억원을 조성하고 3억5천만~4천만원을 주고 브로커 6명을 동원했다.

이중에는 김영삼 (金泳三)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닌 전 자원재생공사 감사 金씨와 국세청 간부 출신인 공인회계사 고효국 (高孝國.52) 씨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렇게 한효가 지난해 2월까지 사들인 주식은 모두 1백70만주로 전체의 36.7%에 해당하는 지분. 金부사장은 "항도종금의 대주주인 서륭그룹이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 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던 터라 "드디어 항도종금을 인수하게 됐다" 고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한효측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경영권 방어에 나선 서륭그룹은 은밀히 주식을 매집, 40%의 주식을 확보해 두고 있었다.

오히려 M&A 추진에 쏟아부은 자금으로 인한 자금난 때문에 한효건설이 IMF사태 직후인 지난해 12월 부도 처리됐다.

또 폐쇄명령을 받은 항도종금은 지난 8월 파산절차에 들어가 한효가 확보한 주식은 모두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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