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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책] 아즈텍의 비밀 ③

중앙일보

입력

핀 라이언은 스페인 세빌랴에 있는 인도 종합기록보존소의 거대한 도서열람실에 앉아 있었다. 핀이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핀의 동료이자 친구인 빌리 필그림 경은 셜록 홈즈가 범죄현장에서 사용했을 법한 돋보기를 손에 들고 누렇게 색이 바랜 양피지 문서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핀의 앞에는 노트북 컴퓨터가 펼쳐져 있었다. 5백년의 차이가 나는 두 개의 기술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다.

“당신은 이런 문서들을 작성한 수도사들의 필체가 요즘 사람들보다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하겠지.”
빌리는 필사본을 들여다보느라 허리를 굽힌 채 구시렁거렸다.
“옥스포드에서 스페인 문학을 전공한 사람은 당신이잖아요.”
핀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세탁물 목록이 아니라 문학이지.”
빌리가 말했다.
“마구 휘갈겨 써서 판독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군. 화물목록, 승객명부, 선하증권, 그리고 설탕산업의 현황과 관련해서 어떤 관료가 다른 관료에게 보낸 메모들이야. 따분해서 미칠 것 같군. 정말 지긋지긋해.”
“〈최후의 성전〉이라는 영화에서 인디애나 존스가 말한 대로 고대사 연구의 대부분은 도서관에서 이루어지죠.”
“그거야 인디애나 존스가 멋도 모르고 지껄인 거지.”
그녀의 금발머리 동료가 대꾸했다.
“당신은 그 친구가 음침한 건물 속으로 들어가 여기처럼 먼지가 자욱한 방 안에 앉아서 오래된 양피지 조각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못 봤을 걸. 그 친구는 쥐나 뱀을 쫓아버리려고 채찍이나 휘둘러대고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밖에 안 하잖아. 차라리 그게 훨씬 쉽고 재미있지.”
“언제 한 번 먼지가 쌓인 방으로 안내해주세요. 저도 거기에 들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핀이 말했다.
“그렇게 할게.”
핀과 빌리는 지난 번 모험을 할 때 런던의 지하에서 공격을 받았다. 빌리의 보트가 암스테르담의 선착장에서 물 밖으로 튕겨 나왔고, 중국해에서 태풍을 만나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으며, 보르네오 북부 해안에서 표류하다가 무인도로 떠밀려간 적도 있었다. 당시 함께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고대 중국 전사들의 후손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겪은 시련의 시작에 불과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누에스뜨라 세뇨라 데 라스 안구스띠아스’와 관련해서 오래된 메모와 선하증권에 뭐가 적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죠?”
핀이 물었다.
“배는 1521년 7월 중순에 허리케인을 만나 키 웨스트(플로리다 남쪽 해안에 위치한 미국 최남단의 섬 - 옮긴이)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바윗돌처럼 가라앉았어. 그 당시에는 키 웨스트를 뼈의 섬이라는 뜻으로 카요 후에소라고 불렀지. 여섯 달 뒤에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을 건지러 ‘누에스뜨라 세뇨라 드 라 콘셉시온’이라는 구조선이 아바나에서 파견되었어. 그 당시 선원들은 구조선을 ‘까가푸에고’라고 불렀대.”
“까가푸에고라고요?”
핀이 물었다.
“대충 번역하면 ‘불을 내뿜는 괴물’이란 뜻이지.”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데요?”
“구조선은 바다 속에서 모든 걸 건져냈어. 난파선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지금껏 내버려둔 거야. 그들은 난파선 누에스뜨라 세뇨라 데 라스 안구스띠아스의 생존자를 찾아냈어. 도미니크 수도회의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 신부였어. 이름이 여러 번 나오는 걸 보면 꽤 유명한 사람이었던 게 분명해.”
“우연의 일치일까요?”
핀이 물었다.
“우연의 일치?”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서 발굴을 하셨어요. 그때 아버지는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에 대해 항상 얘기하셨죠. 그 사람도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이었어요. 코르테스와 함께 멕시코를 침략한 신부들 가운데 한 사람이죠. 사실 그는 코르테스의 고해신부였어요. 그래서 몬테수마(1466~1520, 아즈텍 제국의 최후의 황제 - 옮긴이)가 자신의 엄청난 보물을 숨겨두었던 유카탄의 비밀 사원의 위치를 포함해서 코르테스의 비밀을 모두 알고 있었죠. 코르테스는 스페인 왕실이 황금과 보석을 빼앗기 위해 종교재판을 통해 자신을 이단자로 내몰까봐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이 신비한 도시의 위치는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죠. 멕시코 식민지의 모든 사람들이 백년도 넘게 그 도시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그 뒤로 도시는 잊혀져 전설로 남았죠. 코덱스에는 도시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가 나와 있었을 테지만 그것 역시 전설로 남게 되었어요.”
핀은 어깨를 으쓱했다.

“코덱스?”
“아코디언 상자처럼 잔주름이 있는 책들이죠. 무화과 나무껍질을 빻아서 만든 종이에 아즈텍의 그림문자가 잔뜩 그려져 있고요. 가장 유명한 것들 가운데 하나는 플로렌틴 코덱스예요. 스페인 종교재판(15-16세기경 이단자에 대한 냉혹하고 잔학한 재판으로 유명 - 옮긴이)은 그것을 없애려고 했고 거의 성공할 뻔했죠. 또 하나는 보투리니 코덱스인데 코르테스가 멕시코를 점령하고 나서 불과 십여 년 뒤에 어떤 아즈텍 사람이 작성한 거예요. 코덱스는 전부 합해서 십여 권 정도 있어요. 지금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죠. 프린스턴에도 있고 파리국립도서관에도 있고 플로렌스에 있는 도서관에도 있고요.”
“바티칸에는 없고?”
빌리는 자기 앞에 펼쳐진 양피지 문서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며 물었다.
“거기에는 가장 유명한 보르히아 코덱스가 보관되어 있죠. 근데 그건 왜요?”
“이 문서는 까발로 네로라는 이름과 바티칸, 그리고 코르테스의 황금도시에 대해 계속 언급하고 있어. 당신이 그토록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코덱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그럴듯하네요. 까발로 네로는 이탈리아어로 흑기사라는 뜻이에요. 체스의 말로 쓰이는 흑기사 있죠?”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 핀은 큰 목소리로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비밀결사 같은 건가?”
“그럴지도 모르죠. 더군다나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이 관련되어 있다면 말이에요. 그들이 바로 종교재판의 배후세력이었거든요. 그들은 종교계의 비밀경찰처럼 항상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녔죠. 마치 15세기에 국가안보를 책임진 조직 같았다니까요.”
“하지만 거기는 로마가 아니라 스페인이었잖아.”
빌리가 말했다.
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두들 종교재판이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종교재판은 본래 바티칸에서 시작되었어요. 시스틴 성당을 짓고 바티칸 도서관을 재건한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스페인의 종교재판을 인정해주었죠. 지금은 교황청 신앙교리성이라고 불리지만 종교재판부는 아직도 존재해요. 바티칸에서 가장 오래된 부서죠.”
“흑기사라니 불길한 느낌이 드는군.”
빌리가 말했다.
“도미니크회 수도사들이라면 종교재판에 관여했을 거예요. 그렇다면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죠.”
핀이 말했다. 그녀는 자기 앞에 놓인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아직도 그게 그곳에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녀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뭐가 어디에 있다는 말이야?”
“코르테스의 황금도시에 관한 코덱스 말이에요. 그게 아직도 바티칸 도서관에 있는지 궁금하다고요.”
“아마 거기까지는 흘러가지 않았을 거야.”
빌리가 기대에 차서 대답했다.
“저희 아버지는 황금도시가 존재한다고 항상 믿으셨어요. 그것은 아버지에게 성배나 다름없었죠.”
“나는 갈라하드 경이 성배를 발견했고 그 뒤에 몬티 파이톤, 그리고 댄 브라운이 발견한 거라고 생각했어.”
“인디애나 존스를 잊었군요.”
핀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그 친구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니면 해리슨 포드를 좋아하는 건가?”
빌리가 말했다.
“쉬- 생각 중이에요.”
핀이 속삭였다.
빌리 필그림은 딱딱한 나무 벤치에 앉아 있다가 불안한지 몸을 꿈지럭거렸다.
“왠지 재앙이 임박한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드는데?”
그가 말했다.
“왜 그렇게 엄살을 부려요?”
핀이 웃으며 말했다.
“세빌랴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황금도시 얘기나 해볼까요?”

그로부터 20분 뒤 목이 훤히 드러나는 흰색 셔츠에 청바지 차림의 한 청년이 알리안자 광장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청년은 자그마한 비디오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관광객처럼 보였다. 사실 어떤 면에서 그는 관광객이었다.

규모가 작은 광장은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광장의 한쪽 면에는 도로가 뻗어 있었고 도로 건너편에 교회가 서 있었는데, 벽돌과 돌로 지은 그 교회는 당장에라도 허물어질 것 같았다. 광장의 바닥에는 무늬를 넣은 돌이 깔려 있었다. 나머지 세 면에는 자그마한 가게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는데, 스타벅스는 한쪽 모서리에 붙어 있었다. 시민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기 위해 자그마한 오렌지 나무들이 광장 주변에 심어져 있었으며 나무마다 밝은 빛의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광장의 한복판에는 어느 광장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분수가 있었다. 이 도시에는 이런 광장과 분수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오래된 교회의 벽을 따라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청년은 의자에 앉더니 카메라에 눈을 갖다 대고 느린 속도로 광장을 빙 둘러보았다.
그는 스타벅스를 특별히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 같았다. 스타벅스는 백색 도료를 칠한 2층짜리 건물의 아래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피사체를 끌어당겨 커피전문점 앞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녀 한 쌍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줌 렌즈로 두 사람을 최대한 확대했다. 그의 카메라에 들어온 남녀는 무척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머리가 금발인 남자는 수영선수처럼 어깨가 떡 벌어진데다 엉덩이가 작았다. 여자는 날씬하고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붉은색을 띠었다. 그녀는 라파엘 이전의 그림에 나오는 ‘샬롯의 여인’만큼이나 아름다웠다.

흰색 셔츠를 입은 청년은 다시 한 번 광장을 빙 돌아가며 카메라에 담은 후 자기 앞에 놓인 테이블 위에 카메라를 놓았다. 그는 셔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국제전화 접속번호를 누르고 이탈리아의 코드를 누른 다음 마지막으로 지역번호 379를 눌렀다. 액정화면에 일곱 자리의 번호가 떴다. 세 번째 발신음이 울렸을 때 저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탈리아어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말했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졌다.
“찾아냈습니다.”
광장에 있는 청년이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인도 기록보존소에 있는 연락책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코덱스에 관한 정보를 포함해서 참고자료를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흥미롭군.”
전화기 저쪽에 있는 사람이 말했다.
“지난 한 달 동안에 두 군데서나 관심을 보였어.”
“이제 어쩌죠?”
흰색 셔츠를 입은 청년이 물었다.
“그냥 내버려둬. 당분간은 감시만 철저히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예하.”
“이제 시작이야. 사실 그동안 무척 오래 기다렸지. 이제 신중하게 처리해야 해.”
“예, 알겠습니다.”
“너무 캐고 들거든 두 사람 모두 처리해. 틈틈이 상황을 보고하도록!”
‘처리하라’는 말은 다시 말하면 두 사람을 ‘죽여 버리라’는 말이었다.

통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청년은 셔츠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집어넣고 스타벅스 앞에 있는 남녀를 관찰했다. 그는 오렌지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향기를 들이마시고 나서 분수 너머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녀 한 쌍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아즈텍의 비밀> 폴 크리스토퍼 지음/312페이지/중앙북스/8월 초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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