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 ‘실종’ 18년 … 아무리 오래 걸려도 반드시 유해 찾는 미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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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처 대령과 유가족들은 미국인 모두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했으며 국가는 이들에게 크나큰 빚을 졌다.”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 실종됐던 전투기 조종사의 유해가 18년 만에 발굴된 뒤 게리 러프헤드 미 해군 참모총장은 2일(현지시간)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역경이 있더라도,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마지막 한 명의 전우를 찾을 때까지 미군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미군은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전우 유해 찾기 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걸프전 당시 실종된 뒤 찾지 못한 유일한 미군으로 남아 있던 미 해군 전투기 조종사 마이클 스콧 스파이처(당시 소령·33세) 대령의 유해가 발굴됐다고 뉴욕 타임스(NYT) 등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1차 걸프전 당시 미군 통수권자였던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은 “그는 쿠웨이트의 자유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이며 역사적인 걸프전의 승리를 이끈 영웅”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는 우리의 자유를 위해 희생했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몸소 실천했다”고 했다. 그동안 “유해라도 찾아 달라”고 요구해 왔던 스파이처의 가족은 “포기하지 않고 그를 찾아 준 국방부가 자랑스럽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스파이처는 1차 걸프전 개전일인 91년 1월 17일 FA-18 호닛 전투기에 탑승해 이라크 서부 안바르 지역을 비행하던 중 실종됐다. 동갑내기 아내와 세 살, 한 살배기 남매를 남긴 채였다. 그의 전투기는 이라크 MIG-25의 공격을 받아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군은 사건 직후 실종 지점을 수색했으나 그의 시신은 물론 전투기 잔해조차 찾지 못했다. 미군은 처음에는 스파이처가 전사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명확한 사망 증거가 없다”며 “그가 실종됐다”고 번복한 뒤 수색 작업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적진에 남아 있는 그의 단서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93년 안바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 카타르인들에 의해 스파이처가 탑승했던 전투기 파편이 발견됐다. 덕분에 미군은 드넓은 사막에서 추락 예상 지점을 좁힐 수 있었다. 미군은 95년 적십자 등 민간 단체를 통해 지역 주민들에 대해 대대적인 탐문조사를 벌였다. 그러다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미군의 이라크 내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수색 작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 정보국(DIA)은 그를 찾기 위한 전담 수색팀까지 꾸렸다. 수색팀은 그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있는 바그다드 일대 묘지들을 찾아다녔고, 그에 대한 정보를 가진 이라크인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스파이처가 전투기 폭발 직전 비상 탈출했고 이라크군에 납치됐다는 제보가 있어 그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초 한 이라크인이 결정적인 제보를 했다. 스파이처가 안바르 지역 사막에 추락해 사망했으며 지역 유목민인 베두인족이 그를 매장했다는 것이다. 미군은 사막에서 한 달간의 발굴 작업을 벌인 끝에 스파이처의 것으로 보이는 유해를 찾아냈다. 미 해군은 1일 유해가 후송된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그의 치과 진료 기록을 검토한 결과 발견된 유해가 스파이처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18년의 ‘스파이처 수색 작전’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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