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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고 일기 쓰고 드라마 보고, 즐겁게 말과 친해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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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는 유엔의 6대 공용어 중 하나다.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10억 명 이상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까다로운 한자와 성조(聲調), 변화무쌍한 어휘들은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언어에는 왕도가 없는 법이다. 반복 학습과 암기는 필수다.
꾸준한 노력만이 결실을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중국어를 잘하는 고수들의 중국어 학습 비법은 조금 달랐다. 중국어를 공부가 아닌
즐거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공통된 얘기였다. 그들은 어떻게 중국어를 공부했을까.

“억지로 해야 하는 지겨운 공부로 중국어를 대하지 않는다. 이것이 중국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다.”
중국어 공신(工神)들은 어렵게만 느껴지는 성조를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한자도 뜻과 고사성어를 하나하나 새기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보물창고다. 이들은 생활 속으로 중국어를 끌어들이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감하게 중국어 실력을 시험한다.

중국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미·중 양강(兩强)시대를 맞이해 미국에서도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동남아 각국에선 중국어가 영어·일본어 못지않은 대접을 받는다. 중국어를 배우는 한국인들도 급증하고 있다. 최근 중국 내 유학생(초·중·고 학생 및 대학생 포함) 가운데 한국 유학생의 비율은 40%를 넘는다. 미국(2위)이나 일본(3위)보다 훨씬 많다.

중국어는 자신의 능력을 남들과 차별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들에게 ‘영어는 기본, 중국어는 필수’라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어를 공부하는 매력 가운데 하나는 중국 고전에서 삶의 지혜와 철학을 배울 때다. 한자 문화권인 한·중 양국이기에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수많은 경구와 격언에 담긴 선인들의 지혜를 통해 스

스로를 되돌아 본다는 ‘중국어 공신’들이 많았다. 제1회 BCT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세 명의 ‘공신’과 SK㈜에 입사해 2년째 근무하는 이정은씨로부터 중국어 공부의 비법을 들어봤다. 외국어 학습에 왕도는 없지만 꾸준한 노력과 흥미야 말로 중국어 공신을 만든 원동력임을 알 수 있다.

문장 통째로 외워라
김조아(18·수원외고 2년)양은 요즘 중국어 말하기 대회를 휩쓸고 있는 소문난'공신'이다. 지난해 5월 중국 교육부 주최 중국어 경시대회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7월엔 중국 지난(濟南)에서 열린 세계 중국어대회에선 3등을 차지했다. 그 외에도 국내 대회에서 20여 차례나 입상했다. 5월 실시된 BCT 제1회 시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뛰어난 중국어 실력 덕분에 올해 고교 조기 졸업을 앞두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죠. 제가 초등학교 때 중국에서 2년 가까이 살았다는 걸 아신 선생님께서 제게 중국인 손님의 통역을 맡기셨어요. 그런데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낙심한 김양은 중국 초등학교 1~3학년 국어책을 구해 달달 외웠다. 녹음 테이프를 반복해 들으면서 될 때까지 따라했다. "기본 문장이 입에 붙으니 조금 쉬워지더군요. 문장을 통째로 외우는 건 빨리 중국어와 친해지는 방법입니다"

김양이 생각하는 최고의 중국어 학습법은 노래를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을 위한 중국어 학습용 노래를 따로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간장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 같은 가사가 많아 까다로운 성조와 발음을 익히는 데 그만이다.

각종 중국어 대회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실전 감각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대회 성적이 대입과 직결돼 있다 보니 신경전이 대단하다. 특히 지방 학생들은 관련 정보조차 얻기 힘들다. 올해 초 김양이 '전국 중국어 특기자 고등학생회'를 주도적으로 만든 이유다. 이 모임의 회원은 130여 명. 주로 온라인으로 연락하고 활동한다. "서로 공유할 정보를 공유하는 선의의 경쟁 풍토를 만들고 싶다"는 게 김양의 작은 포부다.

중국 고전은 나의 힘
임방순(52) 육군 대령은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30분 동안 중국 TV의 대담 프로를 시청한다. 퇴근 후 30분간은 예전에 공부했던 중국어 교재를 복습한다. 그는 ‘어학은 암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조건 외우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연상해 가며 즐겁게 암기해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그렇게 암기한 것을 실생활에서 활용하죠.”

그는 군(軍) 내의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1977년부터 4년간 육군사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했고, 대만 군사학교에서 1년간 연수했다. 2002년부터 2년간 주중 한국 대사관에서 육군 무관으로 일했다. BCT 제1회 시험에도 응시했던 그는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종합적인 판단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다음번에도 응시해 보려고 합니다.”

그는 중국어의 매력 가운데 하나로 ‘4자성어’를 꼽았다. 음악 같은 성조와 간단한 표현으로 정곡을 찌르는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삼국지』 등 중국 고전문학에 나오는 4자성어 공부를 특히 즐긴다. “술자리에서 마음이 통하면 1000잔의 술도 적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반 마디의 말도 많다(酒逢知己千杯少 話不投機半句多)라고 해보세요. 중국 친구들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그는 앞으로 중국어 동시통역사에 도전 할 계획이다. 그가 중국어에 푹 빠진 이유는 뭘까. 일제 강점기에 만주에서 한의원을 하던 조부모가 어린 시절부터 중국 이야기를 많이 들려준 덕택이라고 한다. “중국을 고려하지 않고선 우리의 안보 문제를 논하기 어렵습니다. 한·중이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중국신문 큰소리로 읽어
"언어는 즐기면서 익혀야 합니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면 오래 계속할 수도 없고 능률도 오르지 않아요."SK㈜ 인사팀 이정은(26)씨가 말하는 노하우는 중국·대만의 TV드라마를 통한 자연스러운 공부다. 중국어와 함께 생활문화와 사고방식까지 익힐 수 있다. 대부분의 중국 드라마에는 자막이 붙어 있어 글자와 발음을 한꺼번에 공부할 수 있다.

"좋아하면 잘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중국에 살지 않고도 중국어를 정말 잘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모두 중국어를 정말 좋아해 열심히 하는 경우였어요"
이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사업가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 선양(瀋陽)과 홍콩으로 가서 고교까지 마쳤다. 대학은 상하이(上海)에서 다녔다. 처음엔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하지만 겁내지 않고 몸으로 부딪히며 중국어를 익혔기 때문에 남들보다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최근 응시한 한어수평고시(HSK)에서는 최고 등급인 11급을 받았다. 이달 29일 실시될 BCT 제3회 시험에도 응시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 초 SK네트웍스에 입사했다. 최근 SK㈜로 자리를 옮겨 중국 현지 직원 채용 업무를 맡고 있다. 이씨는 틈날 때마다 중국 신문을 큰 소리로 읽는다. 눈으로 읽는 것보다 오래 걸리지만 훨씬 효과적인 공부법이다. 중국어는 동사 변화나 높임말이 없고, 단·복수 구별이 없다. 그래서 간단한 대화를 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고급 단계로 올라가 아주 잘하기는 어려운 언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중국어는 매우 함축적인 언어입니다. 알면 알수록 깊이가 느껴지고 그만큼 재미있어요. 좋아서 하다 보면 어느새 중국어 실력이 늘어났음을 느낄 것입니다"

조선족 만나면 중국어로 인사
“식당에서 조선족 아주머니들을 만나면 항상 중국어로 말을 겁니다.”
서호석(14·오산 운암중 1년)군은 기회 닿을 때마다 중국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인터넷으로 중국의 7학년(한국의 중학교 1학년) 과정을 중국어로 공부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중국어로 일기를 쓴다.

서군이 중국어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상하이의 작은아버지 집에 놀러 갔다가 중국어의 매력에 빠졌다. 그래서 4학년을 마친 뒤엔 아예 상하이로 건너가 1년 반을 지냈다.

“중국어는 소리 내는 방법이 재미있어요. 영어보다 배우기도 쉬운 것 같아요.”
그는 지난해 한국외국어대가 개최한 전국 외국어 경시대회 중국어 부문에서 어른들을 제치고 본선에 올라 장려상을 받았다. 지난 5월엔 BCT 제1회 시험에 응시해 어른 못지않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평소 자신 있게 생각한 말하기 영역에선 만족스럽지 못했다. 비즈니스 현장의 대화 내용을 묻는 문제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BCT사업본부 측은 “출제 의도와 맞지 않는 내용의 답변을 하면 점수를 못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BCT 시험 재도전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한어수평고시(HSK)도 8급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요즘엔 아버지와 초등학교 5학년인 동생도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덕분에 식구들과 함께 중국어로 대화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서군의 중국어 실력이 최고다. “제가 아버지에게 가르쳐드려요. 동생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제 상대는 안 되죠.”

서군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멋진 중국어 통역사가 돼 한국을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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