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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미국경제'저성장·고무역적자'로 흔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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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3.8%로 9년 만에 최고, 물가상승률은 1.7%로 11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경제학교과서를 새로 써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같은 낙관론은 지난 여름을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지난 8월말 '디플레이션의 전염' 이라는 기사를 통해 신흥시장의 금융위기가 예삿일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미국의 주요교역국인 일본.캐나다.멕시코 등 3국중 일본은 금융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캐나다와 멕시코는 원자재값 하락으로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자재값 폭락과 디플레이션의 전염, 그리고 수입수요 급감으로 인해 미국의 수출은 둔화세가 뚜렷해졌다.

그 결과가 뚝 떨어진 성장률로 나타났다.

지난 2분기중 국내총생산 (GDP) 성장률은 1분기의 5.5%에 비해 크게 낮은 1.6%에 그쳤다.

제너럴 모터스 (GM) 의 장기파업이라는 돌출변수가 작용하기는 했지만 지난 3년간 분기별 성장률로는 가장 낮은 수치다.

이에 앞서 지난 5월중 무역적자는 사상 최대 (1백57억5천만달러) 로 집계됐다.

8년째 확장국면에 있는 미국경제가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신뢰지수에서도 그런 조짐은 확연히 드러난다.

이 지수는 지난 9월 3개월 연속 하락해 126으로 주저앉았다.

여기에다 섹스스캔들로 떨어진 클린턴 대통령의 리더십도 경제의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 미국경제 발목잡는 자금경색 = 돈을 떼일 걱정이 적은 금융권이나 초우량기업 주변만 맴돌 뿐 기업.가계 등 정작 필요로 하는 곳에는 흘러 가지 않고 있다.

러시아사태가 터지면서 생긴 투자위험 회피심리가 두루 번져 가고 있다.

은행대출.회사채 발행.유통.신규상장 등에 차질이 빚어져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이 필요자금을 제때 구하지 못해 파산위기에 처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8일 2개면에 걸쳐 신용경색 관련 특집기사를 실었다.

투자자들의 심리가 위축되면서 주가가 떨어지고 신규상장도 크게 줄고 있다.

신규상장 물량은 올 들어 줄곧 월 1백50억달러를 넘었으나 8, 9월에는 각각 30억달러를 밑돌았다.

골드먼 삭스증권을 포함한 유수기업들이 기업공개를 연기했다.

재무부채권과 정크본드의 금리차는 8월 중순만 해도 5%포인트 미만이었으나 지금은 6%포인트를 넘는다.

전망이 확실한 쪽으로만 돈이 몰려 미국 재무부채권 (30년 만기) 의 수익률은 지난 5일 4.72%로 사상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인기절정이다.

상업용부동산 시장도 크게 영향받고 있다.

입주수요가 많은데도 가격이 15~20%씩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이 잘 안되는 바람에 원매자들의 구입능력이 떨어진 탓이다.

◇ 달러폭락과 엔화폭등 = 이 현상은 미.일 양국의 요인이 일시에 한데 어우러지면서 터져 나왔다.

우선 일본쪽을 보면 금융안정법안에는 자기자본비율이 8%를 넘는 우량은행에도 재정자금이 지원되는 등 당초 예상보다 강도 높은 금융안정 의지가 담겨 있고, 10조엔의 추가 경기부양책은 일본경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확산시켰다.

그러나 최근의 환율변동은 엔화강세보다 달러약세라는 색채가 강하다.

그 배경은 역시 흔들리는 미국경제에 있다.

7일의 달러 폭락세는 ▶내년 미국경제가 침체하고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그리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의장의 발언에 자극받았다.

이 발언에 놀란 기관투자가들과 특히 헤지펀드들이 무차별 달러투매에 나섰다.

외환전문가들은 엔화가 당분간 달러당 1백20엔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연구원 박해식 (朴海植) 박사는 "엔화강세가 당장 한국의 수출이나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 정부가 금리인하.통화팽창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펴는 데 따른 부작용을 줄여 줄 것으로 보여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뉴욕.도쿄 = 김동균.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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