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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에세이]'동거'를 인정하는 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파리에 사는 커플 두 쌍중 한 쌍은 결혼하지 않고 사는 동거 (同居) 커플이다.

프랑스 국립통계청이 최근 실시한 센서스에서 나타난 수치다.

프랑스 전체로는 2천만 가구중 5분의1인 4백만 가구가 동거커플. 프랑스 통계청은 새로 결혼하는 커플 가운데 87%는 이미 동거 과정을 거친 커플이라고 밝히고 있다.

마음이 맞는다고 덜컥 결혼부터 하는 남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아이들까지 낳고 살면서도 일부러 동거 상태를 유지하는 커플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동거의 '장점' (?) 은 자유로움이다.

법적으로 피차 '순결의 의무' 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뀌면 이혼이란 번거로운 절차 없이 갈라서면 그만이다.

문제는 법적 보호다.

동거 커플중 한쪽이 사망했을 경우 프랑스법은 상대방의 상속권을 사실상 인정치 않고 있다.

임대차 계약도 그대로 이전되지 않는다.

맞벌이 부부에 적용되는 통합과세도 인정되지 않고 있다.

같이 살기는 하지만 법적으로는 별개의 남녀인 셈이다.

9일부터 프랑스 하원에서 심의가 시작되는 '시민연대협약법안' (PACS) 은 동거에 관한 법적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동거를 결혼과 동일한 이성간 결합양태의 하나로 공식인정한다는 뜻이다.

특히 동성간 동거를 이성간 동거와 똑같이 취급하고 있는 점은 이 법안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인간 결합양태의 선택폭이 그만큼 넓어지는 셈이다.

프랑스 가톨릭계는 법안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

우파도 물론 반대다.

집권 사회당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이 법안의 최종형태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법안 자체가 프랑스 사회의 급속한 풍속 변화를 말해주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파리=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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