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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엔 권력형 ‘돈주’, 회령엔 장사로 돈 번 ‘달러돈궤 아바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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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06면

청진의 한 시장에서 매대를 차려놓고 옷가지를 팔고 있다. 시장 울타리 밖 메뚜기상인의 매대로 보인다. 북한 당국이 시장을 외부에 잘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몰래 촬영해 화질이 안 좋다.

2004년 평양시 중구역 련화동에 60평형 20층짜리 3개 동 아파트 공사가 시작됐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쯤 되는 중심가에 들어서는 당·내각 간부용 아파트다. 그런데 중앙당이 발주한 이 공사에 아파트당 3만5000달러씩 모두 10채에 35만 달러라는 ‘북한에선 엄청난 개인 돈’이 몰렸다. 분양 공고를 한 것도 아닌데 그랬다. 공사비가 달린 건설사가 ‘돈주 10명’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공사 뒤 건설사는 10명 돈주에게 아파트 10채를 줬다. 물론 돈주가 원하는 마감재도 썼다(고위 탈북자 한수산씨 증언. 이하 탈북자 이름은 모두 가명).

북한의 부자들 동국대 북한일상생활연구센터 공동 조사

개인의 외환 소유가 불법으로 돼 있는 북한에서 3만5000달러씩이나 내고 정부 아파트를 불하받는 ‘돈주’는 어떤 사람일까.

평양 중구역 아파트에 사는 김한수씨의 살림은 남한 기준으로도 세련됐다. 남한·중국·일본·미국제 냉장고·세탁기·컬러TV·녹음기·컴퓨터들이 있다. 된장·간장· 조미료는 중국산, 옷은 중국·일본 원단으로 맞춰 입는다. 교육비까지 합해 한 달 생활비 1000달러 정도. 주식인 고기는 도살장에서 직접 가져다 줬고, 비만인 부인은 ‘대체로 마른 보통 평양 사람의 눈’ 때문에 외출이 거북할 정도였다. 북한 평균 월급 2000원, 암시장 환율이 달러당 3000원 정도인 평양에서 김씨는 상상을 넘는 호사를 하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 수남시장 내부.

수십만 달러 쌓아놓기도
비결은 그가 김정일 비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 산하 5호 관리소의 사금 담당 간부라는 데 있었다. 2007년 이혼하자마자 탈북한 김씨의 전 부인 박연혜씨는 “남편이 금을 빼돌려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상인들에게 넘겼다”며 “규모를 밝히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북한 주민이 1년에 ‘충성의 자금’으로 바치는 140g의 금을 슬쩍 한 것이다. 한씨는 “평양의 신흥 부자로 등장하는 돈주들은 이렇게 주로 외화를 빼돌린 사람들”이라며 “언제라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권력층이 평양 250만 주민의 3~5% 정도”라고 했다. 지방에도 돈주가 있다.

중국의 싼허(三河)를 마주보는 함경북도 회령시는 김 위원장의 어머니 김정숙의 고향이자 혁명 도시다. 시내 강안동에 사는 ‘종희 아바이’는 중국과 수산물 장사를 오래한 뒤 돈주가 된 사람이다. 그 집 가까이 살다 2007년 탈북한 김옥연씨는 “현찰로 수십만 달러를 쌓아놨다는 소문이 있다”며 “북에서 살 때 아버지는 늘 ‘종희아바이는 철궤에 달러를 쌓아놨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높은 대문을 세우고 담도 높게 둘러쳤다. 부러운 것 없이 살며 아들 종수·종희가 ‘보위부를 갖고 놀아’ 간섭도 없다.

청진 출신 안신옥씨는 ‘두부집 박탄실네’의 이웃에 살았는데 “90년대 중반부터 두부집은 현물로 치면 남한돈 20억~30억원 되는 북한돈 2만~3만원을 갖고 있어 큰돈도 턱턱 빌려주며 돈놀이도 했다”고 했다. 안씨는 “회령의 역전동·성천동에는 중국과 장사해서 돈 번 사람이 많은데 종희 아바이 같은 사람도 몇몇 더 있다”고 했다.
북한에서 ‘돈주’라고 불리는 북한판 백만장자가 늘어나면서 경제 지도가 바뀌고 있다. 중앙SUNDAY와 동국대 북한학과 북한일상생활연구센터(센터장 박순성 교수)의 공동 조사에 따른 결과다. 센터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8~2009년에 걸쳐 25명 탈북자를 심층 면담했으며, 중앙SUNDAY는 이를 토대로 10여 명을 추가로 심층 인터뷰했다.

그 가운데 장사를 하다 탈북한 사람들은 “지역마다 돈주들이 있다. 평양이 가장 많고 재산도 세다”고 꼽았다. 돈주가 있는 지역으로 나진·신의주·평성·원산·해주·사리원·회령·함흥 등 대도시와 온성군·무산군 등 전국을 망라했다. ‘누가 돈주인가’에 대해 장사했던 사람들은 같은 ‘장사꾼’을, 다른 이들은 ‘외화벌이꾼과 당 비자금 관리자’들을 꼽았다.

처형 걱정에 재산규모는 비밀
‘돈주의 재산 규모’에 대해 탈북자들은 ‘90년대에는 수만 달러 정도, 최근엔 훨씬 더 많은 액수’라고 기준을 제시했다. 한씨는 “평양은 권력형 돈주, 지방은 시장을 통해 큰 자생형 돈주가 많은데 들키면 시범 케이스로 처형될 수 있기 때문에 재산 규모는 절대 비밀”이라고 했다.

홍민 박사는 “황해도의 도시에선 5000~1만 달러 정도를 꼽기도 하지만 지역에 따라 80년대 이미 1만 달러, 90년대는 3만~5만 달러를 가져야 돈주로 봤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1만 달러는 최근 암시장 환율로 3000만원, 평균 월급 2500원인 근로자의 1만200개월치 월급, 1000년치 연봉이다. 사회주의 체제라 전기료나 교육비·의료비 등이 무료라 북에선 엄청난 돈이다.

홍 박사는 “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상인 가운데 부를 축적한 ‘돈주’는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개선조치, 2003년 5월 ‘종합시장 운영에 관한 조치’가 나온 뒤 상업자본가로 진화하고 있으며 북한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온도계가 되고 있다”고 했다. 또 “돈주가 북한 전체 대외 교역의 70%를 장악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들은 북한 상업 유통의 모든 단계에서 개입해 돈을 굴리거나 뒷돈을 댄다”고 했다.

탈북자들은 돈주의 기원을 ‘권력형과 생계형’으로 나눴다. 평양에서 살다 2000년대 중반 탈북한 고위층 출신 한시연(남·30대 중반)씨는 “평양의 돈주는 해외 거주자, 해외 교포, 중앙당·외화벌이기관 같은 권력기관 간부 등 세 그룹으로 나뉜다”고 했다.

한씨는 “친구의 친척이 이란의 테헤란에서 북한 회사에 근무한 해외 거주자인데 10년간 무기를 취급하다 개인 계좌로 100만 달러를 빼돌렸다 요덕 수용소에 들어갔다”고 했다. 또 “조선쏘프트웨어산업총국 한우철 총국장 같은 교포 출신은 몇 백만 달러를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한우철은 사망한 전 조총련 의장 한덕수의 장남이다. 또 “평양시 보통강 구역에는 60평짜리 아파트 두 개를 터 사는 북송 교포가 있는데 가정부도 있고 애들도 사교육을 시킨다”고 했다.

온성에서는 ‘5부자’ 소문
지방 돈주는 장사꾼 출신이 주류다. 권력자들과 관계를 하지만 권력 자체는 아니다. 중국산 옷장사를 하다 2006년 탈북한 함북 온성군 출신 임한오씨는 ‘온성 5부자’를 꼽았다. 30대 김창룡은 주석궁 경리부를 배경으로 온성에 무역회사를 차렸는데 소문에 따르면 ‘일제 레일·마약·귀금속’ 같은 것을 팔았다. 임씨는 “집에 가봤는데 33평 아파트에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내는 개인 전화를 놓고, 남한제 TV, 일제 옷장·녹음기·소파·침대가 들어찼다”며 “대개는 전기 사정이 안 좋은데 어디서 따로 공급받는지 에어컨도 켜고 살았다”고 했다. 명절 때는 구하기 어려운 털게를 먹고, 수입산 바나나와 과일을 즐기며, 외국산 개도 애완용으로 키웠다. 그외에 국가보위부를 끼고 무역하는 진길(40대), 온성군 국가보위부장의 운전수 문화(30대), 인민무력부 답사단에 적을 걸어둔 영삼(30대), 여관 지배인 채현기(50대)를 거론했다. 문화의 부인은 고리대금업을 했고, 영삼의 딸은 북한에서 좀처럼 배우기 힘든 피겨 스케이팅을 배웠다.

청진 출신 선동화씨는 95년부터 포항시장 땅바닥에서 삶은 계란 장사를 했다. 2000년엔 매대를 사서 중국산 잡화를 떼다 팔았고 2004년 말엔 ‘실컷 먹고 쓰고도’ 한국돈 1000만원 정도의 자본이 생겼다. 그 가운데 100만원은 2부 이자 놀이를 하면서 ‘새끼 돈주’가 됐다. 그런데 그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돈이 많은 아줌마 돈주가 청진에 있었다”고 했다. 역시 청진 출신으로 90년대 말 입국한 정인호씨는 “북에서 달러를 마룻바닥 밑에 20㎝씩 쌓아놓고 산다는 돈주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선씨는 “고난의 행군 때 못 먹고 못살다 장삿길에 나선 사람들이 이제는 토대를 잡아 진짜 돈주가 됐다”고 했다.

돈주의 성장과 북한 체제의 변화 전망에 대해 박순성 교수는 “돈주가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에 위협적 요소이긴 하지만 기존 체제에 순응하며 부를 축적한 것이기 때문에 체제를 유지하고 변형된 상태로 유지하려는 속성도 크다”고 말했다. 돈주는 탈북하지 않는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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