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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600년 ‘정치 1번지’…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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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형형색색의 꽃으로 장식된 서울 광화문광장 ‘플라워 카펫’이 31일 공개됐다. 광화문광장 북쪽 끝부분부터 폭 17.5m, 길이 162m 크기로 조성된 플라워 카펫은 22만4537본의 꽃으로 만들어진 전통 단청 문양 디자인의 꽃밭이다. [사진=김태성 기자]

조선시대 ‘정치 1번지’였던 광화문 앞 세종로가 ‘시민의 광장’으로 탈바꿈했다. 광화문 광장이 들어선 자리는 조선시대 때 ‘한양에서 가장 넓은 길’이었던 육조거리가 있던 곳이다. 육조거리는 1394년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을 건축하며 그 정문인 광화문 앞에 만든 대로를 말한다. 국가통치기구인 의정부를 비롯해 육조(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 등 주요 관청이 길 양쪽으로 들어서 ‘육조거리’라고 불렸다. 조선시대 정치의 중심지였다.

이 육조거리는 당시 보통 대로의 3배 너비(폭 51~53m)로 건설됐다. 백성·왕·신하가 함께 어울리는 ‘광장’이라는 의미를 담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때부터 도로와 문화 공간의 기능을 모두 가졌던 특별한 길이었던 것이다. 연산군 때는 동대와 서대라는 두 개의 무대가 만들어져 매일 공연을 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광화문은 1592년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함께 잿더미가 됐다. 이후 270여 년간 방치되다 흥선대원군이 1868년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광화문도 옛 모습을 되찾게 됐다.

그러나 민족의 운명과 함께 광화문과 그 일대 거리는 다시 수모를 겪었다. 1925년 일제는 경복궁 일부를 마구 훼손하고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우며 광화문을 허물어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발이 예상외로 컸다. 일본 지식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예술을 위해, 역사를 위해 저 경복궁을 건져 일으켜라”라는 글을 발표하는 등 곳곳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자 허무는 대신 해체를 결정한다. 해체된 광화문은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입구 쪽으로 옮겨졌다. 원래 광화문이 있던 자리에는 조선총독부 광장이 생겼고, 조선의 관청은 모두 철거됐다.

광화문은 6·25전쟁 때 다시 불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68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했지만 원래 자리에서 동쪽으로 10m, 북쪽으로 14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이후 조선총독부 건물이 95년 철거되고, 광화문 되살리기 사업이 논의돼 오다 2006년 광화문 광장 계획이 확정됐다. 2008년 4월 공사를 시작해 1년3개월 만에 시민의 품에 안기게 됐다.

임주리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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