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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읽기 BOOK] 여행, 내면의 지도따라 걷는 사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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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작가들의 여행편지
김다은·함정임 편저
예스위캔, 295쪽
1만3000원

문득 여행을 떠나기로 한 당신은 지금 서점에 있습니다. 그러나 ‘베스트 맛집’이나 ‘알뜰 쇼핑 정보’ 등을 떠올렸다면 이 책은 아무런 해답도 줄 수 없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책은 지극히 사적인 편지 묶음입니다. 스물 다섯 명의 소설가와 시인들이 여행을 꿈꾸면서, 여행을 떠나면서, 여행을 하면서,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누군가에게 띄웠던 편지들이 소담스레 담겼습니다.

당신은 어떤 여행을 꿈꾸며 준비하고 있나요? 아찔한 감수성을 지닌 작가들의 여행이란 확실히 남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대개 무언가 풍성한 볼거리를 찾고자 여행을 떠나잖아요? 한데 책에 담긴 편지글을 보면, 작가들에게 여행이란 무언가를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결의처럼 여겨져요.

이를테면 작가들은 옛 애인의 결혼식장에 나타날 수 없어서(백가흠), 악착같이 사는 삶을 벗기 위해(이명랑), 먼저 세상을 뜬 남편에 대한 추억을 더듬으며(서영은) 여행길에 나섭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라고 작가들과 다를 게 무어냐 싶기도 해요. 여행자에겐 숙명같은 외로움이 있잖아요. 편지를 띄운 작가들도 “자기 내면의 지도를 따라 걸어가는 사색의 과정이 곧 여행”이라고 입을 모으네요.

강원도 장호항에서 띄운 박형준 시인의 편지를 볼까요. “나는 사막만큼이나 고단한 여정을 통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는 깊은 샘물을 찾아 떠나 보렵니다.” 홀로 적적하게 걸어가지만 그 여로엔 오늘을 돌아보고 내일을 꿈꾸는 사색이 함께 하는 법이죠.

유명 관광지에 대한 정보 대신 여행 본연의 사색의 길을 엿보고 싶으셨다면 이 책은 썩 괜찮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감수성을 활짝 열어제친 작가들이 편지 형식을 빌어 누군가에게 자신의 여행담을 꼼꼼히 털어놓습니다. 책에선 히말라야 카트만두에서의 박범신, 인도 상카샤에서의 차창룡, 티그리스 강가에서의 문정희, 타클라마칸에서의 김탁환 등 낯선 시간 속을 돌고돌아 스스로를 재발견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편지란 발송자와 수신자가 일대일로 교감하는 가장 내밀한 대화 아니던가요? 그러니 공개된 작가들의 여행 서신은 불특정 독자를 향한 쑥스런 고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들의 속삭임을 따라 이번 여행길에 휴대할 스스로의 내면 지도를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책을 엮은 소설가 김다은씨는 서문에서 “우리 문단에 없는 ‘편지 문학’이라는 새 장르를 정착시키기 위해 책을 엮었다”고 했습니다. 그 당찬 시도를 지지하며 독자 여러분께 ‘편지 서평’을 띄웁니다. 그럼 이만.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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